[한국강사신문 도영태 칼럼니스트] 돈 많은 사람들은 계속 돈을 굴려 부자가 되고, 가난은 대물림 된다. 희귀병, 불치병에 걸리고 재해를 당하는 사람은 모두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다. 잘생긴 남자가 재능도 많고, 집안도 괜찮은데 게다가 공부까지 잘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바람둥이가 결혼 잘해서 잘 먹고 잘 산다. 요직은 사장 친인척이 도맡고 우리는 죽도록 일만 한다.

세상은 이렇게 불평등 하다. 선천적으로 신분제가 없어졌고 인간의 평등권을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시대임에도 우리사회는 직위와 직함, 또는 영향력으로 제2의 신분을 만들어 개인들을 수십 단계로 차별화 시키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신용카드 등급과 대출 한도가 조정되고 특정 모임의 참석이나 입장 자체가 제한되며 이미 다져진 친분관계와 상황에 의해 직장에서는 승진기회도 양보해야 한다. 정말 참으로 누구에게나 불평등한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평등한 조건이 형성되어야 세상은 또 굴러가고 동기와 활력이 붙는다.

한번 생각해 보자. 누구나 똑같이 인생을 산다면 굳이 좋은 위치에 오르겠다고 기를 쓰고 고생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신을 학대하면서까지 이를 악물고 성공을 향한 도전에 헌신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가령 올림픽 메달의 주역들에게 병역면제를 주는 것은 면제받지 못하는 대다수의 선수들에게는 분명 불평등한 처사다. 그렇다고 병역의무의 혜택을 동등하게 적용한다면 앞으로 그들의 펄펄나는 경기를 보지 못할 것이다. 모순일지 모르지만 인간이 평등해야 함은 당연한 진리지만 상대적으로 불평등해야 그 안에서 새로운 평등 개념과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보다 우리는 납득하지 못하는 평등에 더 분노해야 하는 것이다. 정의를 상실한 불평등이 문제이다. 불평등한 부정부패를 일삼고, 우수한 성과를 낸 팀과 개인에게 보상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하고는 실제로는 부서별로 돌려가며 나눠먹기 하거나 연공서열로 혜택을 주는 곳이 있다면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평등의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차별은 어쩔 수 없는 결과물로서 인정해야 한다. 자격증과 같은 시험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결과에 따라 차등하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고 실행상에서의 불평등을 통한 우열을 가려야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다.

아니꼽고 억울하다면 오히려 불평등한 상황을 역이용해 그 대열에 합류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혜택을 더 받도록 하자. 극단적으로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낀다면 성형수술이라도 받아서 이후 달콤한 차별대우를 즐겨 보거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소수에게만 권한이 있는 특별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차별 혜택을 누려보자.

그래도 다행히 이 사회가 차별적 대우를 원천봉쇄 할 만큼 불량스럽지는 않다. 불평등은 있지만 기회는 균등하기 때문에 틈새를 노려 도전하고 노력하면 된다. 태어 날 때부터 누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누구는 재벌아들로 태어나는 선험적 불평등에 속이 상하더라도 화를 내지 말자. 뭐 어쩌겠는가? 흙수저로 태어나서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그게 진짜 화딱지 나는 불평등인 것이다.

세상은 그저 불평등하려니 인정할 때 역설적으로 담대하게 자기 인생과 방향을 찾게 된다. 불평등을 수용하자. 그리고 건전한 차별의 행복감을 누릴 수 있도록 요만큼만 더 힘있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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