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돕는 명상 스토리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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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이주아 칼럼니스트] 요즘 어떤 의문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 의문들 중 질문으로 변화되어 나를 행동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의문은 삶의 수준을 결정하고, 질문은 삶 자체를 바꾼다” 타이탄의 도구들을 쓴 팀 페리스의 메시지이다.

동네 이장님 댁에 전화가 딱 한 대 있고, 초등학교를 가려면, 두 고개를 넘어 1시간을 걸어가야만 했던 충남 한 시골 농가의 소녀가 있다. 사춘기 탓인지 환경 탓인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내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왜 하필 나는 이런 집에서 태어났을까?’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고, 방과 후나 주말에 밭일, 논일 등 농사일을 돕지 않아도 되는 시내 아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한 가득이 되면서, 가정환경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었다. 결국엔 넉넉하지도 않으면서 자식만 많이 낳았냐는 생각과 함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각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하혈을 할 만큼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차 지내던 소녀에게 의문의 변화가 생겼다.

‘왜 인간은 굳이 태어나는 것일까?’16살 그해 여름. 원두막에서 농사지은 수박과 참외를 팔던 엄마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헐레벌떡 병원에 달려가 숨 쉬지 않는 엄마를 마주한 그 때 생겨난 의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음을 직면하고, 인간 육체의 생명이 유한함을 마주한 그 때 생겨난 의문이다. ‘어차피 끝은 죽음인데, 우리 엄마 너무 고생만 하며 사셨다. 결국에 죽을 거. 왜 인간은 굳이 태어나는 것일까? 뭘 위해 살아야 하나? 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나? 사후세계라는 것이 있을까?’

숨 쉬고 있는 지금. 왜? 무엇을 위해? 숨쉬고 살아야 하는가란 강력한 의문은 매 숨결마다 나에게 들러붙어 고단하게 하더니 결국 질문으로 바뀌었다. ‘어디를 가야 인간이 굳이 왜 태어나는지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삶 자체가 바뀌었다.

컴퓨터, 인터넷, 핸드폰도 상용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 막연히 출가를 해야 답을 얻을 것 같은 생각에, 학교를 하루 빠지고 근처 절을 찾아 헤매다가 돌아 온 소심한 행동 이후, 3년간의 헤메임. 방황 후 19살 그 해. 명상을 만나면서이다.

바짝 마른 스폰지가 사정없이 물을 흡수하듯, 몸의 감각을 깨워 현재의 몸,마음과 연결되고, 에너지 감각을 깨워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감각을 깨워 나갔다. 그리고 한 달만에 듣게 된 “인간은 혼의 성장과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는 메시지에 머릿 속 안개가 걷힘을 느꼈다.

상처를 줄 수도 없고 상처를 받을 수도 없는, 신의 거룩한 사랑과 창조성을 닮은 항상한 우리 안의 밝은 본성이, 일상에서 사랑의 실천 행동으로 표현되어 쌓여나갈 때, 혼이 크고 완성이 된다는 것이었다. ‘혼비백산’ 죽을 때 육체는 흩어져도 사랑실천으로 잘 성장된 혼은 날아오른다는 것이었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랑 실천. 아픈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사랑 실천 등 많은 사랑실천 중에서 최고의 사랑실천은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경험하고 알게 하는 것. 정체성과 생의 목적을 정립하게 도와주는 것이라 했다. 몸과 마음에 전율이 오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숨 쉴 이유를 만나게 된 안도와 감사함이었다.

그렇게 명상지도자의 뜻을 세웠다. 숨 쉴 목적을 알았으니, 대학에 갈 필요성이 옅어져 대학을 가지 않기로 선택했다. 담임선생님과 가족들의 반대로 대학에 입학 해, 명상동아리를 만들고 명상센터에서 사범을 하며 스스로 선택한 숨 쉴 목적에 맞는 일상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명상을 만난 후로 계속 된 삶과 죽음에 대한 26년 정도의 여정동안 많은 공부들을 하게 되었고, 다양한 체험과 경험들을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정돈된 성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학문적 근거를 나열하는 딱딱한 글보다는 인간이기에 품게 되는 의문과 질문들을 쉽고 편하게 나누고 싶다. 필자의 것이 정답이고 진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 자신만의 답을 내면에서 만나도록 스토리텔링식의 글로 만나고자 한다.

“우리는 영적인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된 체험을 하는 영적인 존재이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필자는, 프랑스 샤르댕 신부님의 이 메시지를 매우 사랑한다. 유한한 생명의 육체를 가졌으나, 유한하지 않은 그 무엇 또한 가진 우리의 실체를 너무나도 쉽고 간결하게 정돈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인간된 체험 중이다. 여전히 성장하는 중이다. 이곳에서 나누 게 될 성찰들이 여러분들의 인간된 체험이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다음 칼럼을 기약한다.

데이비드 호킨스가 말한 자비로운 선물을 전해주는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감사할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그들의 참모습을 인정해주고 동일한 참나가 모든 이의 내면에서 빛나고 있음을 알아주고, 그들의 분리된 느낌을 치유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안겨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안겨주는 것은 참존재의 자비로운 선물이다.” <데이비드 호킨스 : 나의 눈(The Eye of the I) 中

칼럼니스트 프로필

이주아 칼럼니스트는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시작한 명상이 소명이 되어, 20여 년간 통합명상지도자, 심신통합치유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심신통합치유학박사를 수료했다. MBSR국제명상지도자(Level 1), KPC 코치 등 명상, 심리, 건강, 영성 4가지 분야의 40여 가지가 넘는 자격증을 갖고 있다. 현재 기업 및 단체와 개인 및 가족들에게 몸, 마음, 삶의 깨어남의 여정을 통합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력 MindEffect>, <삶을 살리는 웰다잉 명상>, <내 삶이 영화가 될 때, 영화인문학>(공저), <사랑하길 잘했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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