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일의 수면경제] 잘 달리는 사람이 오래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잘 회복하는 사람이 오래 달린다
“카본화가 쏜 화살, 수면이 치유한 시간”
[한국강사신문 황병일 칼럼니스트] 러닝을 하다 보면 기록을 내는 사람에게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부상을 통해 나는 중요한 사실을 다시 배웠다. 오래 달리는 사람은 잘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회복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배드민턴 선수 안세영 역시 신발이 맞지 않아 반복적인 발 부상을 겪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지만, 신발 한 켤레가 만든 미세한 손상이 누적되면 부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다.
가을 마라톤 시즌을 앞두고 새로 산 카본화를 신고 훈련을 했다. 카본화는 가볍고 탄성 있는 반발력 덕분에 페이스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실제로 달리는 동안에는 통증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뒤 2~3시간이 지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무릎 안쪽, 발목, 종아리, 고관절까지 찌릿한 통증이 몰려왔고, 다음날 아침에는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나에게 맞지 않은 카본화가 화근이었다.
마라톤 대회장까지 갔다가 결국 되돌아왔다. 아쉬웠지만,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주변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신발 때문에 그렇게 아플 리 없다.” “너무 많이 뛰어서 그런 거야.” 이 말들이 더 답답하고 속상하게 다가온다.
쾌감은 위험을 가린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쾌락 편향(Affect Heuristic)이라고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감각이 쾌적하면 몸의 경고 신호조차 무시하게 된다. 카본화의 반발력과 속도감은 이러한 착시를 강화했다.
달리는 동안 아무런 이상이 없던 이유는 지연성 힘줄 손상(Delayed Tendon Stress) 때문이다. 운동 후 신경 감각이 회복되고 염증 반응이 활성화되면서 몇 시간 뒤에야 통증이 드러난다. 이는 행동경제학의 현재편향(Present Bias)과 유사하게 닮아 있다.
지금 느끼는 쾌감(속도·가벼움)은 크게 평가하고, 미래에 치러야 할 비용(부상·회복 기간·시즌 전체 손실)은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수면부채, 건강부채, 금융부채가 쌓이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금 괜찮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은 결국 미래의 고통을 키운다.
특히 건(힘줄) 조직은 혈관이 거의 없어 혈관이 많은 근육보다 회복 속도가 4~6배 느리다. 카본화 부상부위 후경골건·거위발건은 회복이 직선(linear)이 아니라 파동형(oscillation)으로 나타난다. 좋아졌다가 다시 아프고, 또 좋아졌다가 찌릿한 통증이 반복된다. 8주가 지나도 통증이 있는 것은 정상적인 회복 과정임을 인정해야 한다.
회복의 중심에는 수면이 있다. 통증이 있어도 7~8시간의 수면을 반드시 확보하려 노력한다. 수면은 성장호르몬을 분비하고,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며, 염증을 조절하고, 건·근막 조직에 회복성 혈류를 제공한다. 즉, 수면은 신체의 부채 상환 시스템이다. 낮 동안 발생한 미세 손상은 밤의 수면을 통해 갚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상은 쉽게 만성화된다.
결국 러닝의 회복 또한 수면경제의 원칙을 따르게 된다. 낮의 활동이 출금이라면, 밤의 수면은 예금이다. 예금 없이 출금만 계속하는 몸은 반드시 파산한다.
부상이 반복된 이유를 되돌아보니, 나 역시 행동경제학의 함정 속에 있었다. 즉각적인 속도의 즐거움은 크게 보이고, 미래에 다가올 부상의 비용은 작게 보였던 것이다. ‘나는 괜찮겠지’ 라는 안이함이 부상이란 화를 불렀다.
지금은 속도를 빼고, 욕심을 내려놓고 있다. 회복을 기준으로 순리에 적응하고 있다. 점프성 움직임을 제한하고, 걷기 시간을 줄이며, 정적 스트레칭과 실내자전거로 혈류를 관리한다. “통증 전에 멈추기”, “회복을 최우선하기”라는 원칙으로 일상을 재정비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이 결국 장기적 회복을 위한 합리적 행동임을 되새긴다.
이번 부상은 패배가 아니었다. 내 몸의 시스템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였고, 수면이야말로 최강의 회복 자산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회복된 몸으로 다시 대회에 서게 될 날이 오면, 나는 확신하고 말할 것이다. “오래 달리는 사람은 회복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황병일 칼럼니스트는 수면경제 전문가로 한국수면관리협회 회장, 네이처슬립 수면코칭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다. 단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박사과정 중이다. 수면전문브랜드 까르마 창업자다. 한국수면산업협회 이사로도 활동했으며, 매일경제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현재 유튜브 ‘잘재남TV’를 운영하고 있다. '수면이 자산이다' 슬립패시브인컴 SPI 플랫폼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수상경력으로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우수논문상, 석탑산업훈장, 제40회 무역의 날 천만불 수출의 탑, 산업기술혁신대상 등이 있다. 저서로는 <우리에게 잠자는 8시간이 있다>, <나는 자다가 성공했다>, <베개 하나로 돈방석에 앉은 남자>, <인생을 바꾸는 숙면의 기술(역서)> 등이 있다.
집에 있을 법한 메모리폼 베개를 1999년 국내최초로 개발했다. 26년 동안 수면사업을 진행해 온 경험과 배움을 기반으로 ‘황병일의 수면경제’라는 칼럼을 연재 중이다. 행동경제학 기반의 수면자산 관리 및 조직 회복력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