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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의 시작이 된 보호무역에 반대한 처칠, 당을 바꾸다!불황을 이기는 리더십 ①
<사진=위키백과>

[한국강사신문 윤상모 칼럼니스트] 1900년 처칠은 부친, 랜돌프 처칠경이 몸담았던 보수당으로 출마해 맨체스터 근교의 올덤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하원 의원에 당선된 후 4년도 채 안돼 보수당과 결별하고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 의원들이 소속 정당을 바꾸거나 탈당하여 새로 당을 만드는 이유는 대부분 한 가지 이유에서다. ‘이곳에서는 어느 당으로 선거에 나가야 당선에 유리한가?’이다. 처칠이 정당을 바꾼 이유는 당선 목적이 아니었다. 자신이 늘 연설에서 강조했던 자유무역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처칠은 영국 의원들 간에 가장 멸시하는 표현인 ‘철새 정치인’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처철이 자유무역주의를 주창한 첫 번째 이유는 가난한 서민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영국의 주요 수출품은 면직물이었고 주 수입품목은 고기, 야채 등의 식료품이었다. 보호무역으로 관세가 올라가면 면직물과 식료품의 수입 가격이 오르게 된다. 그러면 면직물을 수출하는 자본가는 이득을 보게 되지만 가난한 서민들은 식료품을 비싸게 사거나 조금만 사야한다. 더 나아가 처칠은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보호무역주의는 결국에는 고립을 자초하여 더욱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확신의 배경은 과거 역사 속의 유럽 국가간의 보호무역전쟁의 결과였다.

초선의원 시절의 처칠<사진=Wikimedia Commons>

무역협정의 시초는 1860년에 영국과 프랑스가 맺은 ‘콥든-슈발리에 협정(영불 통상조약)’이다. 조약의 핵심 내용은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것이었다. 이 조약 덕분에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공산품과 와인을 상대국에 두 배 이상 수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콥든-슈발리에 협정은 1892년에 파국을 맞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벌어진 무역전쟁의 영향으로 프랑스가 영국에 대해서도 관세를 올리는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기 때문이었다. 1871년 통일을 이룬 이탈리아는 자국의 산업을 키우기 위해 보호무역에 나섰다. 프랑스와 맺은 무역협정도 1886년 파기했다. 프랑스 경쟁업계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물렸고 프랑스가 맞불을 놓으며 보복의 악순환이 일어났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무역전쟁으로 두 나라의 교역은 급감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캐나다도 무역전쟁을 벌여 두 나라의 상대국에 대한 수출은 이전 대비 50%까지 떨어졌다.

처칠은 자국의 산업만을 지키려는 보호무역의 결과를 역사을 통해 배웠고 자유무역주의는 자신의 소신이 되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20대의 초선 의원은 과감하게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처칠의 소신이 옳았음은 20여 년 뒤에 벌어진 ‘대공황’ 때 확인되었다.

1920년대는 미국의 경제가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주가는 연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고 미국 경제의 자산가치는 2배로 늘어났다. 그러던 1929년 여름 경기가 위축되기 시작하더니 10월 뉴욕 증시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검은 목요일’이라는 단어도 그때 생겨났다. 경제학자들은 대공황이 심화된 이유가 미국의 허버트 후버 행정부가 1930년에 제정한 ‘스무트-홀리 관세법’ 때문이었다는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의 후버 행정부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한 이유는 미국의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기타 산업 지역의 의원들의 요구로 관세품목이 2만여 개로 늘어났다. 관세율은 거의 60%까지 올라갔고 미국의 교역상대국들도 보복관세를 물리면서 미국의 무역 규모는 66%가 줄었다. 대공황은 전 세계로 번져나갔고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은 15% 감소했다.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때 전 세계 GDP가 1%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대공황 때의 세계의 경제 붕괴는 어느 정도였는지 추정할 수 있다.

대공황은 1차 대전에 대한 전쟁배상금으로 허덕이던 독일 경제를 더욱 침체에 빠트렸다. 경제난에 힘들어 하던 독일 국민들은 독일 우선주의를 내세운 극우파시스트 정당인 나치당에 표를 몰아 주었다. 나치당의 총통이 됀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공약은 ‘미국 우선주의’였다. 불법으로 체류중인 이민자들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미국 백인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관세를 올리는 보호무역주의을 선언했고 중국을 시작으로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보호무역의 결과가 어땠는지를 잘 알고 있는 미국의 정치계, 경제계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측근중에서도 보호무역정책에 반대하는 경제 보좌관들이 연이어 사임했다. 최근 실시된 하원 선거에서는 공화당 출신인 트럼프의 일방적인 정책에 반대하는 일반 시민들이 민주당에 더 많은 표를 주었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과거의 전례를 답습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사진=아주경제>

리더의 판단과 결정은 그의 지위와 영향력에 비례해서 중요도가 올라간다. 우리는 그것을 ‘권력’이라고 부른다.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권력이란 그것을 값지게 쓰려고 하고 쓸 능력이 있는 사람이 추구한다면 인간의 직업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다.”

※ 참고자료 : 「리더라면 처칠처럼」 플래닛미디어

 

윤상모 칼럼니스트  hp13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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