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이미숙 기자] 15일,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가을바다의 전설, 조기' 편이 방영된다.

[사진출처=KBS]
[사진출처=KBS]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 칠산바다로 돈실러 가세” 서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돈이 되는 물고기로 위세를 떨쳤던 주인공! 제사상에 올라 절받는 물고기로 불렸고, 임금님부터 서민까지 누구나 즐겨 먹던 국민 밥도둑, 조기다! “파시”라 불린 황금 어시장의 시대를 열었던 주역이었지만 남획과 환경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사라져 버린 사연 많고, 추억도 많은 생선! 서해안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품어온 조기의 추억과 사연을 만난다.

[사진출처=KBS]
[사진출처=KBS]

그 많던 조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 위도 조기 파시의 추억

조기의 전설이 시작 되는 곳. ‘칠산바다’ 신안군 임자도에서 부안군 위도 일대에 이르는 이 바다는 일곱 개의 섬이 모여있다 해서 칠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제주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는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북상하는데 그 길목에 자리잡은 칠산바다는 조기 황금어장으로 자자했다.

평생 바다와 동거동락한 강대홍 씨. 꽃게가 귀한 대접을 받는 지금과 달리 고기 취급도 못 받던 때가 있었다는데. 어종이 풍부해 귀한 조기가 득실득실했던 시절 돈 담을 데가 없어서 자루에 담았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우스갯소리로 전해올 뿐. 그 많던 조기는 어디로 갔을까? 위도의 관문인 파장금은 파도가 길게 치면 돈이 몰려온다는 뜻 그대로 돈이 넘쳐났다는데. 개가 돈을 물고 다닐 정도였다고. 조기떼를 따라 팔도에서 몰려든 사람들도 섬 전체가 들썩였고 좁은 골목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파장금 골목에는 파시 때 성행했던 요릿집 터만이 옛 영광을 간직하고 있다.

조기 파시는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때의 음식과 맛은 혀끝에 남았다는데 파시가 성행할 때면 위도 여기저기 돼지 잡는 소리로 요란했다고. 뱃고사나 큰일 치를 때 먹었던 ‘피창국’ 일종의 선짓국인데 갓 잡은 돼지에서 얻은 고기와 내장, 창자까지 깨끗하게 손질해 푹 삶아 고기와 내장에 김치를 넣고 선지를 부어가며 치대며 잘 버무리는 것이 조리법의 핵심. 선지가 굳지 않도록 저어가며 끓인 피창국은 당시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옛맛이다.

이맘때 꽃을 피우는 상사화는 줄기를 꺾어서 쪼갠 후 바닷물에 숨죽이고 말려서 보관했는데 머윗대 비슷한 맛이 나 나물처럼 볶아도 먹고 국이나 조림을 할 때도 요긴하게 썼다.

‘몸부릿대 나물’을 깔고 손질한 조기를 넣어 칼칼하게 끓인 뜨끈한 조기탕은 외롭고 고단한 삶을 위로해준다. 풍어를 알리던 흥겨운 배치기 소리도 잦아들고. 그때 그 조기맛도.. 조기 파시의 추억도 기억 속에서 흐려진다. 당시의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위도 사람들의 오랜 밥상을 만나본다.

[사진출처=KBS]
[사진출처=KBS]

가을 조기가 돌아왔다 - 목포항 생조기

칠산바다에서 조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70년대 초. 남획으로 씨가 마른 조기들은 바다의 환경까지 바뀌게 되자 먼 남쪽으로 서식지를 옮겼다. 조기잡이의 주 무대는 제주 인근 해역. 금어기가 끝나는 이맘때부터 이듬해 봄까지 제주 인근 해역으로 조업을 나갔다 돌아온 어선들로 항구가 북적인다. 자체적으로 4개월간 금어기를 지정해 조업해온 덕에 예전만은 못하지만 어획량이 평년 수준에 머문다고.

국내 조기 위판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목포항. 가을조업이 시작되고 배에서 내린 조기를 선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일이 눈으로 보고 선별했던 전과 달리 요즘은 기계로 무게를 측정해 선별하는데. 기계로 선별해도 크기와 무게별로 나누어 상자에 담는 건 사람의 몫. 노련한 솜씨로 조기를 담는 손길이 빨라진다.

오후 5시부터 새벽까지 꼬박 밤새워 선별작업을 마치면, 이제 조기들이 주인을 만날 차례! 30년 넘게 중도매인으로 살아온 최종재 씨와 아들 최용준 씨도 새벽길을 나선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수산업에 뛰어든 용준 씨. 흔히 조기라고 부르는 참조기는 아가미가 빨갛고, 몸통이 노랗고 살이 단단한 것이 신선하다는데. 아버지를 따라나서며 철마다 어떤 생선이 나오는지 어떤 생선이 신선한지 실전으로 하나하나씩 배우고 있단다.

수산물 가공에 유통까지 하다보니 바다 사정에 울고 웃는 일이 많았지만 수산업에 종사했던 아버지 덕분에 귀한 생선을 원 없이 먹으며 자랐다고. 늘 먹었던 생선이지만 언제 먹어도 맛있다는 조기!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나서면서 어머니 양귀숙 씨도 손을 걷어 부쳤다. 평생 바닷물고기를 만지며 살아와 생선냄새가 지겨울 법도 하지만 아이들 학교 보내준 생선이라며 오히려 정겹다고.

참기름에 구운 조기에 장국을 붓고 큼직하게 썰은 마를 넣어 끓인 조기장국조림은 시어머님이 해주시던 가족들만의 별미.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부드러워서 어른들도 즐겨 드셨다고. 두 아들이 으뜸으로 꼽는 조기구이는 소금 살짝 뿌려 구우면 이만한 밥반찬이 따로 없다. 먹기 좋게 포를 뜬 조기살에 소주와 생강으로 비린내를 잡고 계란물 묻혀 은근한 불에 굽는 조기전. 성격 급한 사람은 굽지 못해 귀숙 씨만의 비기라는 조기전. 한번 맛보면 담백한 맛에 헤어나올 수 없다.

비늘이 손상된 파조기는 내장까지 통째로 조기젓을 담는데 김장 담글 때도 반찬으로도 활용만점. 쌀뜨물로 짠맛, 비린맛 줄이고 양념에 조물조물 무친 조기젓무침이면 금세 밥 한그릇 뚝딱. 늘 곁을 지켜준 가족처럼, 오랫동안 밥상을 지킨 고마운 생선 조기. 짠내 비린내 품고 살아온 아버지와 가족들의 풍성한 조기 밥상이 차려진다.

[사진출처=KBS]
[사진출처=KBS]

조기, 굴비가 되어 전설이 되다

서해에서 잡힌 조기는 법성포에서 굴비(屈非)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소금에 절이고 바람에 말리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데다 꼬릿꼬릿 오묘한 감칠맛이 더해진다. 법성포는 칠산 조기어장이 가깝고 염전이 발달해 소금을 구하기 쉬워 굴비 만들기 최적의 조건. 세종실록에는 법성포 조기가 세금으로 사용됐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소금에 절이고 말려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제 모양을 갖추고 있어 ‘군자의 생선’이라고 불렸던 조기. 독이 없어서 내장 째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생선 중 으뜸으로 꼽는 이유라고.

남도음식 명인 최윤자 씨는 귀한 상차림에 올랐던 조기는 제사상은 물론 혼례 때 이바지 음식에도 빠지지 않았다고. 이바지 음식에도 큰 병어나 민어를 제치고 가장 윗자리는 조기의 몫. 크고 좋은 생선을 쪄 고명으로 색과 모양을 낸 이바지 음식은 사돈댁에 정성과 솜씨를 전하며 “내 자식 잘 봐주세요” 라며 존경과 예의를 표현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다른 생선은 빠져도 조기가 빠지는 경우가 없는데. 그래서 조기를 올려두고 다 절을 하니 ‘절 받는 생선’이라고도 불렀다.

보리 속에 굴비를 넣어두면 차가운 보리 덕분에 굴비가 상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보리가 기름을 쫙 흡수하면 굴비의 감칠맛은 더 깊어졌다. 항아리에 보관하던 굴비를 꺼내 방망이로 두드려 살을 발라 절구에 곱게 빻아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색을 입히면 입에서 사르르 녹는 것이 정성이 담긴 만큼 어른들도 쉬이 잡수시던 굴비보푸라기. 조기를 삶아 살을 발라내 부추와 구기자를 더해 푹 끓이면 어르신들의 기운을 북돋는 보양죽이다. .에 조기죽 한술은 몸과 마음을 거뜬하게 하는 최고의 보양음식이다. 조기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은 귀한 마음이었다.

[사진출처=KBS]
[사진출처=KBS]

굴비, 그 다음을 꿈꾸다 – 법성포 3대 굴비 가족 이야기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 법성포 굴비거리에 여전히 많은 가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나무걸대에 굴비 말리던 풍경에서 지금은 실내 냉동실에서 영하 40도 냉풍에 반건조로 말리고 있다는데 바뀐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건 전통 염장법인 ‘섶간’으로 조기를 절인다는 것! 굴비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작업이어서 섶간만큼은 고수하고 있단다.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3대째 굴비를 만드는 정용진 씨. 입맛도 변하고 식문화도 달라지면서 전통 굴비를 지키면서 굴비를 활용할 다양한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는데. 굴비 장사하겠다고 나선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남들처럼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바쁜 아들을 도와 틈틈이 굴비를 엮는다는 이맹순 씨는 염장한 조기를 한 마리씩 엮어 10마리, 20마리 엮는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조기철이면 온가족이 동원되어 끼니까지 거르며 손바닥 닳도록 굴비 엮던 시절이 있었다고. 법성포로 시집 와 서툰 솜씨로 조기 엮던 새댁은 여든을 넘고.. 조기 엮는 데는 도가 텄다며 고됐던 시절 밤잠 설쳐가며 일했지만 큰 조기가 많이 나올 때면 힘든 게 싸악 가셨다고.

집에 굴비 떨어진 적 없지만 큰 조기는 제사나 명절 때나 맛 볼 수 있었는데 명절에 남은 나물을 깔고 남은 생선과 조기를 넣고 자글자글 끓인 조기짜글이는 삼시 세끼 질리지 않고 먹었던 별미. 고추장에 넣어서 찢어먹던 고추장굴비는 요즘 방식으로 굴비살을 양념에 버무려 간단하게 찬물에 밥 말아서 한끼 뚝딱 밥도둑. 쉽게 만들 수 있는데다 달콤하며 짭조롬한 것이 젊은 사람 입맛에도 제격. 10년 전 부산에서 맛본 어묵맛이 기가 막혀 굴비살을 넣어 어묵을 개발했다는 용진 씨. 전통 굴비맛은 지키고, 굴비에 대한 인식을 바꿔 현대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시작했는데. 처음엔 다들 고개를 갸웃하지만 굴비 특유의 차진 식감과 고소함에 빠져든다.

<한국인의 밥상> 576회 ‘가을바다의 전설, 조기’ 편의 방송시간은 9월 15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이다.

* 한국인의 밥상 기본정보 - 국민배우 최불암(나이-1940.6.15.)의 진행으로 지역 대표 음식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역사, 그리고 음식문화 등을 아름다운 영상과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해 매주 한편의 '푸드멘터리'로 꾸며내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이다. 공식영상, 회차정보 등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