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녹고 다시 얼어붙는 빙벽처럼, 시대는 흐르지만 기록은 여전히 생생하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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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김지영 기자] 하얀 고드름에 바친 그들의 뜨거운 이야기! 높은 산을 오르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며, 우리는 그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을 산악인이라고 부른다. 100여 년 전 이 땅에 발현한 근대 산악활동이 암벽을 넘어 차가운 빙벽에까지 대상지를 넓혀간 시간이 어느덧 반백 년이 되었다.

이 책은 하얀 고드름에 바친, 뜨거웠던 청춘의 서사다. 일제강점기, 북한산에서 시작해 금강산에까지 폭을 넓혔던 한국의 빙벽등반은 다시 1960년대 말부터 설악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시도된다.

그 중심에 토왕성폭이라는 한 시대의 과제가 있었으며, 이를 둘러싸고 북한산 구천은폭부터 봉화산 구곡폭포, 설악산 일대의 크고 작은 폭포들까지, 겨울마다 산악인들의 활동 무대가 넓어져 갔다. 그리고 빙벽이라는 무대에서 펼쳤던 산악인들의 크고 작은 기록들은, 지금은 녹아 없어진 그 빙벽 앞에 여전히 생생한 기록으로 남았다.

“늘 녹고 다시 얼어붙는 빙벽처럼, 시대는 흐르지만 기록은 여전히 생생하다”

현재 한국 산악인들의 빙벽등반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빙벽등반만큼은 어느 나라의 클라이머들도 감히 넘볼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짧은 등반 역사와 한정된 대상지 속에서 이룬 이러한 성과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차가운 빙벽에 바친 뜨거운 열정의 시간들이 바탕이 되었다.

겨울에 얼어붙은 빙벽은 봄이 되면 언제나 녹고, 또 날이 차가워지면 새로운 모습, 한번도 같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우뚝 선다. 그리고 그 수직의 세계에 써 내려간 이야기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우리의 곁에 있다.

저자 손재식의 《한국빙벽열전: 집념의 마력, 빙벽에 미친 행복한 도전자들(마운틴저널, 2022.09.26.)》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명의 빙벽”

우리 산하의 어느 봉우리 혹은 어느 계곡의 빙벽으로 돌아가면 결국 김정태와 엄흥섭에게로 귀결된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빙벽등반을 먼저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1924년에 개점한 일본 제일의 등산용구점인 오사카(大阪)의 호일 산장에 피켈과 아이젠을 주문한다. 호일 산장 주인 니시오까 가즈오는 일본의 이름난 등산가였다. 그는 일류 인장인 야마우치에게 니켈 크롬 합금의 피켈을 만들도록 했다.

그 피켈은 1935년도 제작 센다이(仙台) 야마우치(山內) 931호였으며 아이젠도 같은 합금으로 북해도 사포로의 가도다 8발이었다. 이 장비로 제일 먼저 북한산 도선사 아래 빙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스텝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1931년 독일의 슈미트 형제가 마터호른 북벽을 초등한 후 일어난 슈미티즘을 이미 인지하고 있던 터였다. 두 사람은 65도 경사의 빙벽을 스텝 커팅 없이 빠르게 오르는 연습을 반복한다. 이때 빙벽등반 교본으로 북알프스의 호다카다케를 초등한 후지끼 구조(藤木九三,1887~1970)의 『암등술』과 영국 윙스로프 영의 『마운틴 크래프트』를 사용했다. --- p.17

“설악산 토왕성폭”

토왕성폭은 최대 혹은 최고라는 말로 표현된다. 국내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수직고 300m 규모에 붙는 수식어다. 그런데 높이보다 하늘에 걸린 환상적인 모습이 시선을 압도한다. 산악인들은 토왕성폭을 바라보며 설악산에 입성하고 돌아올 때도 그 신비의 성채에 눈을 떼지 못한다. 폭포가 얼어 빙벽이 되면 존재감은 사뭇 달라진다.

이땐 진정한 산악인이 되려는 사람들의 통과의례 장소가 된다. 70년대 산악인들은 마치 퇴로가 끊긴 듯한 이 은밀한 장소를 발판으로 알프스를 꿈꾸고 히말라야를 동경할 수 있었다. 알프스의 6대 북벽을 오르며 자연과 교감했던 가스통 레뷔파1921~1985의 심미안에 편승한다면 산은 지구의 일부라기보다 독립된 신비의 왕국이며 그곳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라 했다.

그리하여 산의 아름다움과 공간의 자유와 등반의 즐거움과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 역시도 산친구의 우정이 없다면 무미건조하다는 글줄을 흰머리 날릴 때까지도 마음에 간직하게 된다. 토왕성폭은 당시의 산악인들을 개척시대 주인공이 되도록 이끌던 곳이었으며 열정을 간직하게해준 빛나는 벽이었다. --- p. 38~40

[사진출처=마운틴저널]
[사진출처=마운틴저널]

저자 손재식은 북한산 자락에서 산과 산서를 벗삼아 지내며 나리뫼, 한국산악회, 코오롱등산학교, 한국산서회에서 활동 중이다. 알프스와 에베레스트 등반 이후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하늘 오르는 길』(2003), 『산은 사람을 기른다』(2003, 윤제학 공저), 『한국바위열전』(2008), 『대한민국 사진여행』(2012)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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