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안상현 기자] 먹고살기 바쁜 데다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왜 경제사를 배워야 하는 걸까? 그것도 다른 나라의 경제사를 말이다. 20년 가까이 금융계에 몸담고 있는 저자 이강희는 『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인물과사상사, 2022.11.04)』에서 ‘부의 법칙’은 불변한다고 이야기한다.

부의 법칙들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껍데기는 달리했을 뿐 알맹이(본질)는 같았다. 부의 법칙을 알고 준비한 15세기 메디치가, 19세기 로스차일드가가 부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누구보다 재빠르게 그것을 먼저 포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7세기 네덜란드 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갔던 ‘튤립 버블’은 2018년 ‘금융 버블’과 닮았다. 19세기 중국과 영국의 무역 수지의 불균형에서 초래된 아편전쟁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열띤 설전을 벌이는 협상 테이블을 떠올리게 한다.

또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은 ‘과세’, 즉 세금 문제를 둘러싼 지배층 간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사건들은 오늘날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키며 여야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세제 개편안이 국회를 표류하고 있는 우리나라나, 감세 정책의 대실패로 취임 50일 만에 영국 총리직에서 물러난 리즈 트러스의 사례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경제 공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 절감하면서도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한다. 게다가 낯설고 어려운 경제 용어 등은 진입장벽을 더욱 높인다. 사실 ‘경제’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경제는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가게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도 경제이고, 쓸모없어진 물건을 중고 거래하는 행위도 경제다. 우리의 일상 그 자체가 바로 경제활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이 켜켜이 쌓여 역사(경제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원하는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라는 파도에 올라타 있다. 그러니 경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 파도 위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금세 바다로 떨어지거나 또 다른 큰 파도가 왔을 때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많은 사람이 손쉽게 경제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의 진입장벽을 낮춰줄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경제사를 추적해나간다.

저자에게 있어 그림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미술적인 관점에서 그림을 다루지 않는다. 사조라든가 미적인 감상평 같은 것은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미술적인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그림에서 당시 정치, 경제적 분위기만을 읽어낸 뒤 자신의 생각을 덧댄다.

예를 들어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를 통해 흑사병의 유행이 중세 유럽 경제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 당시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는데, 노동력의 감소는 인건비의 상승과 노동권의 확보를 가져왔다.

게다가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지금의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함께 다루며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식의 폭넓은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또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과 당시 네덜란드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청어를 연결 지어 이야기한다.

이 그림에 그려진 배는 당시 청어 조업에 나갔던 ‘부스’라는 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네덜란드는 청어산업 덕분에 북유럽을 넘어서 유럽 경제의 패권국가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동시대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다작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비결로 ‘분업화’를 꼽으며, 분업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말한다.

이런 점에서『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는 그림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야기를 하며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지금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가 5천 년간 이어진 유럽의 경제사로 우리들을 안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를 추적하다 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인류가 어떠한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알 수 있어 예상치 못한 변화나 문제를 마주하더라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역사적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유럽의 경제뿐만 정치, 사회, 문화의 지형도를 바꾸어놓은 ‘재화’를 중심으로, 2부에서는 ‘사건’을 중심으로 경제사를 훑는다. 인류가 대항해시대를 열어젖히게 된 계기는 ‘후추(향신료)’ 때문이었으며, 배타적경제수역을 정하게 된 까닭은 ‘청어’를 둘러싼 영국과 아이슬란드 간의 갈등이 국제전으로 비화될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군사무기보다 ‘석유’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석유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식량’, ‘소금’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처럼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준 재화는 매번 바뀌었지만, 부를 만들어내는 속성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고정불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16~17세기에는 세상의 모든 부가 에스파냐와 네덜란드로 향했지만, 이내 변방의 섬나라였던 영국이 새로운 경제 강국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그 자리를 미국에 넘겨줘야 했다.

지금 미국은 어떠한가. 냉전시대에는 초강대국이라 불리며 절대적 우위를 점했지만, 냉전체제가 무너진 현재는 중국과,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유럽 여러 국가의 도전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이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되짚다 보면 부가 어디로 모여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고, 앞으로의 경제 패권에 대한 향방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부터 오늘날 가상자산의 등장까지, 지금의 유럽 경제를 만든 다양한 사건 속으로 지적 여정을 떠나보자.

[사진출처=인물과사상사]
[사진출처=인물과사상사]

저자 이강희는 금융계에 들어선 지 20년에 이르고 있다. 이 기간은 화려한 수상 경력과 보여주기식의 타이틀 같은 미사여구가 불필요함을 깨우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거대 공룡과 같았던 리먼브라더스의 몰락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 두바이사태, 남유럽PIGS위기, DLS사태, 라임사태 등 굵직한 금융위기를 거쳐 코로나19로 인한 금융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최근의 금리인상까지 현대사의 여러 대형 금융 사건을 겪으면서 이 같은 사태에 영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식견을 넓혀가고 있다.

2018년 『문화일보』에 칼럼을 쓰기 시작해, 현재는 『전북도민일보』와 『소비라이프』에도 칼럼을 쓰고 있다. 또 브런치에서 역사를 중심으로 술과 음식, 금융·경제·문화에 관한 통섭의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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