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안상현 기자] 1970년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동물의 60%가 사라졌다고 한다. 코로나19의 기원에도 야생(동물)을 침범하고 파괴한 인간의 탐욕이 있다. 인간과 동물이 다양한 관계로 얽힌 채 기후위기-신종 감염병-생물다양성 위기 앞에 ‘함께’ 서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인간과 자연, 지구생태계에 대한 앎과 실천을 새롭게 지으라고 요구한다.

『불타는 지구를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마농지, 2022.10.25)』은 이러한 인식 위에서 우리의 동료인 ‘동물’과 모두의 터전인 ‘지구’를 ‘그림’이라는 창을 통해 살펴보는 책이다.

동물학과 생물학 지식, 철학, 생태사상, 미술비평을 넘나드는 다층적 에세이로, 동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우리의 뿌리, 동료 생물, 그리고 모두의 집인 지구 자연의 생태적 다양성에 대한 사유로 나아간다.

또한 사회적 이슈에 밀착해 새만금개발사업 목적 변경, 고래고기 유통 금지, 연승어업 금지, 개 식용 철폐, 동물 권리의 법적 인정, 동물원 혁명 같은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1부는 개와 고양이, 범과 곰, 말과 양처럼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2부의 지평은 ‘지구’로, 물 순환계, 바다, 산림 생태계, 습지 같은 자연과 함께 도요새나 혹등고래처럼 지구를 여행하며 살아가는 여행자 동물들을 조명하고 있다.

3부에서는 코로나ㆍ기후위기로 상징되는 오늘의 총체적 생태위기를 성찰하면서 새로운 인간관, 동물관, 지구관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글에는 내용과 관련된 미술 작품이 풍성하게 배치되어 있다. 다양한 화폭에 담긴 아름다운 작품들이 때로는 내용 이해를 돕고 때로는 독자적인 예술비평의 세계를 열어 보이며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게 한다.

이 책은 본격적인 화집이나 미술 에세이는 아니다. 그러나 여러 시대에 걸친 동서양의 뛰어난 미술 작품들을 향유하는 심미적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쓸쓸한 아시아흑곰의 모습을 포착한 다케우치 세이호의 〈눈 속의 곰〉(1940)을 시작으로 현대 팝아트 예술가 마이크 벨의 배트맨 그림까지 60여 명 화가의 작품 100여 점을 수록하고 있다.

한국 화가 정선, 김홍도, 변상벽, 민정기, 김재환, 중국 화가 왕이, 추일계, 허곡, 일본 화가 히시다 슌소, 우타가와 히로시게, 가츠 교쿠슈, 영국 화가 아서 테이트, 리처드 웨스톨, 프랑스 화가 카미유 피사르, 테오도르 제리코, 핀란드 화가 에로 야르네펠트, 네덜란드 화가 안톤 마우버,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 스위스 태생의 펠릭스 발로통과 파울 클레 등 낯익거나 생소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인간과 동물과 자연의 모습을 음미하게 한다.

저자는 단순히 소재 차원에서 작품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감식안으로 섬세하게 그림을 읽어내고, 미학적 분석에 더해 철학적ㆍ생태적 사유와 지구 생명사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인간이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는 떠돌이 개들을 그린 윌리엄 스트럿의 〈포트럭〉은 야생의 존재였던 개가 어떻게 인간의 세계로 편입되었는지에 대한 추론과 만나면서 ‘폐기물 배출자’라는 인류의 생태적 범죄를 직시하게 한다.

사냥꾼의 눈으로 곰과 인간의 마주침을 담아낸 필립 굿윈의 〈곰이다!〉를 통해서는 ‘시선의 주체’와 타자를 바라보는 방식을 성찰하며, 리처드 웨스톨의 〈여름 폭풍〉은 불안에 잠식당한 인간과 개의 얼굴 그리고 평온한 양들의 침묵을 대비하는 가운데 산업자본주의의 공장식 축산이 야기한 소외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그림 속 당당한 야생 흑마의 자태에 시선을 빼앗긴 저자는 이내 굴레를 쓰고 채찍을 맞으며 노동하다 쓰러지는 테오도르 제리코의 말을 보며, 이 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질문한다. 화폭에 담긴 동물과 자연에 대한 탐구는 곧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인수공통감염병의 확산 원인이 인간에 의한 산림 파괴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병원체 숙주의 서식지인 열대 야생에 대한 인간의 폭력이 산림 파괴의 중요한 동인인데, 이러한 사실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가령 바이러스가 가장 선호하는 숙주 동물의 하나인 박쥐를 박멸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1200종이 넘는 박쥐 중에서 일부 종만이 사람에게 감염병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무해하든 그렇지 않든 박멸은 문제의 원인을 악화하고 증폭하는 방식일 뿐이다.

저자에 따르면, 감염병 전문가들은 다른 해결책을 제시해왔다. 박쥐와 인간 사이에 생태적 완충지대를 마련하고 건드리지 않는 것, 박쥐의 서식지를 보호하고 서식지 내 생물다양성을 풍요롭게 함으로써 바이러스가 돌발적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자연을 훼손하는 자본의 운동과 소비 양식에 제동을 거는 근본적인 접근법이며, 동물과 인간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적정한 ‘거리 두기’로써 공존하는 방식이다. 감정과 의식의 주체이며 자기 삶의 주체라는 점에서 인간과 박쥐는 다르지 않다.

숙주 동물을 비롯한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고 동물과 맺어온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만이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실천할 때 저자가 말하는 ‘미래를 그리워하는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미래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미래를 염려한다는 것도, 희망찬 미래를 꿈꾼다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미래는 구조와 돌봄의 대상이다. 가망 없는 상태일지도 모르는 가상의 미래를 현재로 끌고 와 바로 그 시간을 바로 지금 살아내야 한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의 시선으로 현재의 사건에 응해야 한다.”

[사진출처=마농지]
[사진출처=마농지]

저자 우석영은 철학하는 사람. 탈근대 전환 연구자. 작가.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출판·연구 공동체 산현재, 생태문명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생태주의 사상, 생태 전환, 탈근대 전환과 관련한 글을 주로 쓰며, 자연문학에도 심취해 산다.

저서로 《걸으면 해결된다Solvitur Ambulando》(공저), 《숲의 즐거움》, 《동물 미술관》, 《철학이 있는 도시》, 《낱말의 우주》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기후, 코로나, 오래된 비상사태》(공역),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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