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안상현 기자] 서울에서 빈곤이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달동네, 판자촌 같은 공간이 공존했지만 이제 빌딩숲 속에 숨은 손바닥만 한 쪽방촌이나 재개발을 앞둔 공가 투성이의 마을,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의 죽음 같은 모습으로만 빈곤은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은 곳곳의 공원과 대단지 아파트들, 초고층 빌딩들로 점점 화려해지고 있고, 10억을 호가하는 아파트들로 이루어진 주거 지역들은 비슷한 소득과 비슷한 지위의 사람들을 모아 놓은 공간으로 빈민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빈곤은 사라진 것일까?

반빈곤활동가 김윤영은 정체 모를 이름의 아파트들과 초고층 빌딩들로 채워져 가는 도시 서울에서 그것이 지워 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자신이 12년간 함께해 온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불러와 작은 골목과 상점들, 그리고 거기서 쫓겨난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되살려 낸다.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후마니타스, 2022.10.24)』에서는 도시 빈민과 함께 싸워 온 활동가일 뿐만 아니라 작은 골목을 기웃거리는 산책자이자 다정한 이웃이 되어 “가난의 얼굴”로 타자화되어 왔던 철거민, 홈리스, 노점상들이 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 평범한 동료 시민이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저자가 12년간 활동하면서 함께해 온 당사자들에 대한 직접 인터뷰와 거리에서 보고 겪은 일들, 그리고 싸우기 위해 쌓아온 자료들에 입각해 있다.

도시가 새로워질 때마다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의 각 공간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저자가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 사이에서 기억해 낸 사람들이다. 경의선숲길 주변의 아파트 단지들, 용산의 빌딩숲, ‘마래푸’가 들어선 아현동에서 반빈곤활동가 김윤영은 텐트를 치고 농성하던 사람들, 망루를 짓고 올라간 사람들, 빈집을 옮겨 다니며 잠을 청했던 사람들을 본다.

모두 도시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통 ‘철거민’이나 ‘노점상’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자기 땅도 아닌데 보상을 해달라고 떼쓰는 사람” “세금도 안 내면서 장사하는 사람”으로 비치곤 하지만, 김윤영이 전해 주는 신계 강정희, 두리반 안종녀, 아현의 박준경, 잠실포차의 김영진 등의 이야기는 모두 우리와 같은 평범한 시민이 각자의 터전에서 아둥바둥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삶들이다.

강정희는 시골에서 상경한 부모님과 함께 신계동 달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부엌 창을 열면, 도원동 철거민들이 지은 망루가 보였지만 그땐 그게 뭔지도 몰랐고 남의 일로만 알았다. 이른 나이에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었던 그녀에게 신계동 그곳은 판자촌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정겨운 이웃들과 딸과 함께한 추억들이 살아 있는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철거용역들의 위협을 견디다 못한 이웃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아랫집은 자살했으며, 자기 집도 외출한 사이 철거당했다. 지금도 그녀는 그때 빼앗긴 세간살이가 생각난다. 그래서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습관도 생겼고, 오랜 노숙농성 탓에 지금도 깨보면 앉아서 선잠을 자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300에 20짜리 아현동 단층집에 살던 1981년생 박준경은 자신이 살던 곳이 재개발 구역이 아닌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된 탓에 하루아침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거리로 나앉게 됐다. 갈 곳이 없었던 모자는 이대로 내쫓기지 않기로 결심했고, 집에서 쫓겨난 이후 빈집들을 전전하며 버텼다.

그러나 철거 용역들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11월 30일, 강제철거가 금지되는 동절기를 하루 앞두고 그는 결국 빈집에서마저 쫓겨났다. 그리고 나흘 뒤 물에 빠진 주검으로 발견된다. 박준경의 장례가 치러지던 날 각종 개발 관련 사이트에는 “세입자 관련 이슈”가 해결돼 퇴거 절차가 마무리되었으며 곧 착공에 들어간다는 속보가 떴다.

지금은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라는 이름의 4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 곳은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일당 망루가 있던 자리다. 재개발 인허가 과정은 이례적으로 초고속으로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세입자들은 개발이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철거 상황을 맞닥뜨렸다.

보상대책은 이사비와 3개월 평균 소득으로 책정된 휴업 보상금뿐. 그것으로는 갈 곳을 찾을 수 없었던 상인들은 망루를 짓고 올라갔다.

저자는 폭력적인 이미지로만 재현돼 온 망루의 철거민들이 실은 구청으로부터도 거절당하고 세상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힘없는 평범한 시민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이듬해 법원은 용산4구역의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절차상의 문제로 무효라 판결했다.

이 책은 홈리스나 장애인 같은 또 다른 도시생활자의 눈으로 광장이나 역사驛舍 같은 서울의 공적 공간들을 다시 보는 책이기도 하다.

서울역 지근거리의 사무실에서 홈리스들과 일상을 공유해온 저자는 지하철 운행이 끝난 새벽 1시가 돼서야 잠을 청할 수 있고, 4시면 역 청소가 시작돼 일어나야 하는 잠자리와 하수도에서 올라오는 모기를 견뎌야 하는 여름과 겨울, 벽을 보고 앉아도 뜨끈하게 쏟아지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일상, 그리고 거리에 누우면 사람들의 발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는 등의 노숙인의 삶을 자세히 들려준다.

또 한때는 방직공장을 운영하던 평범한 시민이었으나 지금은 서울역 인근 텐트에 사는 정기영 아저씨의 이야기는 노숙인을 타자화된 빈자의 얼굴이 아닌 한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보게 한다.

[사진출처=후마니타스]
[사진출처=후마니타스]

저자 김윤영은 빈곤사회연대에서 2010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해서 집회에 나가 행진하는 일이 제일 즐겁다. 가난한 이들을 동정이나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빈곤을 만들어 내는 세계의 구조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빈곤사회연대는 철거민, 노점상, 장애인, 홈리스, 쪽방 주민들과 함께하는 여러 단체들의 힘을 잇고 모으는 일을 한다. 앞으로도 그 일에 함께하고 싶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시설사회』, 『유언을 만난 세계』를 함께 썼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