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안상현 기자] ‘명분’에 앞서 ‘실리’를 추구한 15세기 조선의 국제관계, 대외정벌은 조선의 의도에 따라 기획·시행된 외교정책이었다. 저자 이규철은 『정벌과 사대(역사비평사, 2022.09.27.)』에서 구체적으로 이 내용을 다룬다.

15세기 조선의 대외정벌은 기존의 통설에서 여진이나 왜구 세력의 침입 혹은 약탈 때문에 시행되었다고 설명되었다. 하지만 당시 기록들을 보면 외부 세력이 조선을 침입한 횟수나 규모는 매우 적었다. 조선은 자신들이 입었던 피해보다 훨씬 큰 규모로 대외정벌을 시행했다.

심지어 침입의 주체를 파악하지도 않고 특정 세력을 대규모로 정벌한 사례도 있었다. 이는 15세기 조선의 대외정벌이 외부 세력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직접 기획하고 주도했던 대외정책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5세기 조선의 대외정벌은 대부분 여진 세력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그런데 여진 지역은 명목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명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조선의 대외정벌은 표면적으로는 여진과 왜구에 대한 군사행동이었지만 실제로는 명-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와 연결된 문제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바로 사대(事大)이다. 조선 건국 이후 사대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태종과 세종은 지성사대(至誠事大)를 강조하며 명에 대한 존중심을 항상 드러냈다.

여진에 대한 대규모 정벌은 조선이 누구보다 강조했던 사대의 가치에 어긋나는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조선의 국왕들은 사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대외정벌의 필요성 역시 강조했다. 15세기의 조선은 사대를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가치가 아니라 국정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정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으로 인식했다.

정벌 추진과 시행 과정에서 나타났던 조선의 대외의식은 정치적 목표에 따라 변용되었다. 조선에게 사대는 중요했지만 그 위에는 국왕권(國王權)이 있었다.

15세기 조선의 국왕들은 누구보다 사대를 강조하면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누구보다 먼저 사대의 가치를 변용시켜 적용하는 일에 앞장섰다. 국왕의 권위와 정치적 권한을 유지하고 확대시키기 위해 사대명분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사진출처=역사비평사]
[사진출처=역사비평사]

저자 이규철은 조선 전기 국제관계사와 역사콘텐츠 연구자로서, 성신여자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이다. 15~16세기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조선의 대외정책을 통해 파악하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기존의 조선시대사 연구를 심화하면서 역사 속 내용을 현대사회에 활용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논저로는 「연산군 대 대외정벌 추진 과정을 통해서 본 외교 역량의 약화」(2019), 『고려에서 조선으로-여말선초, 단절인가 계승인가』(공저,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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