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안상현 기자] 『세 여자의 사랑(이매진, 2022.12.05)』에서는 어느 가족이 등장한다. 가부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여자들의 그림자 노동으로 지탱되던 돌봄 공동체는 붕괴한다. 이 붕괴한 가족의 잔해 속에서 성장한 1998년생 김나은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한다.

열 살 먹은 고양이하고 살면서 새벽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역아동센터 교사와 장애인 활동 지원사로 일하면서 좋은 돌봄을 고민한다. 내가 세상에 존재해도 될까 고민하던 나은은 어느 날 혼자 사는 ‘프로 돌봄러’ 할머니를 인터뷰하기로 한다.

80대 할머니 인터뷰는 곧 이야기 듣기로 바뀐다.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은 새로운 사랑의 출발이 될 수 있을까?

중매 서는 사람이 한 실수 덕분에 사랑도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 임순은 평생 무급 돌봄 노동을 한 80대 할머니다. 치매까지 닮은 시어머니와 남편 달웅, 아빠는 세상을 떠나고 엄마는 도망간 조카들, 맞벌이하느라 맡긴 손녀들까지 모두 열여덟 명이 53년 동안 24시간 멈추지 않은 ‘프로 돌봄러’의 돌봄 노동에 기대어 살아갔다.

글도 모르고 기술도 없는 임순은 부처님 말씀에 의지하며 평생 돌봄의 굴레에 갇힌 고통을 풀었다. ‘여자가 글 배우면 여우가 된다’며 배울 기회를 뺏긴 탓이었다. 이혼 뒤에도 서로 증오하는 며느리, 가까이 혼자 살면서도 어머니를 찾지 않는 아들, 도무지 결혼 생각 없는 손녀들은 임순을 돌보지 않는다. 효부상 트로피만 덩그러니 임순이 사는 시골 아파트를 채울 뿐이다.

못 배워 한 맺힌 임순에게 대학 공부까지 한 며느리 도희는 손에 물도 묻히게 하고 싶지 않은 아까운 존재였다. 아들을 낳지 못해 주눅 들던 도희는 임순 같은 삶을 거부했다. 비정규직 노동을 하면서도 수도권 ‘학군지’에 딸을 보낸다.

자식이란 좋은 대학에 진학해 계층 상승을 대리할 수단이라고 도희는 생각했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컸다. 돌봄 노동에 몸도 마음도 지친 임순에게 또 돌봄을 떠맡겼고, 논 팔고 집 판 돈을 빼앗았다.

부모란 모름지기 자식 위해 희생하면서 사랑을 증명해야 한다고 도희는 생각했다. 딸들은 그런 엄마를 증오했다. 지친 도희는 진짜 사랑을 찾는다면서 가족을 버리고 떠난다.

임순의 손녀이자 도희의 딸인 나은은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돌봄의 연대기를 기록하기로 했다. 돌봄과 희생이 삶의 전부인 듯 납작하게 보이던 할머니의 내면은 다채로운 욕망과 사랑이 가득했다.

남자는 데려다 정성으로 돌봐야 한다거나 아버지 빚을 대신 갚으라는 등 가부장적 훈계를 늘어놓던 할머니도 막바지에는 ‘너도 네 인생이 있구나’라며 다른 삶을 인정하고 이해한다.

‘내가 세상에 존재해도 될까’ 하는 의문을 해결하려는 이기적 욕망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새로운 사랑의 출발점이 된다. 그 사랑이 나아갈 곳은 아무도 모른다. 여자 사람 나은의 삶과 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임순은 가부장제로 아래 돌봄으로 이어진 삶을 살지만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다. 자식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려던 도희는 도전에 실패하고, 부채와 가난에 시달린다. 무너진 욕망과 붕괴한 가족이라는 실패한 사랑은 나은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대물림된다.

나은은 돌봄과 가부장제가 지탱하던 전쟁 같은 삶이 무너진 잔해를 헤집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짜 사랑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묻는다. 세 여자가 이야기하는 삶과 사랑은 우리들이 겪는 현실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은 사랑하면서 살고, 진짜 사랑이든 가짜 사랑이든, 사랑 없는 삶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이매진]
[사진출처=이매진]

저자 김나은은 1998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열 살 먹은 고양이하고 함께 살고 있다. 에세이와 소설을 쓴다. 《아트인사이트》, 《대학알리》에 기사와 에세이를 기고했다. 《일곱 개의 원호 2호: 삶》, 《ODD》에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좋은 돌봄은 대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지역아동센터 교사와 장애인 활동 지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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