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안상현 기자] 『순간의 존재(세창출판사, 2022.12.02)』의 내용을 적확하게 이해한 독자라면 필자가 열어 놓은 철학적 사유의 새로움을 직감하고 전율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필자가 열어 놓은 철학적 사유에 의해 생성될 체험적 현실은 인간 현존재의 존재의 근원적이고도 본래적인 참혹함을 함께 드러낸다. 필자가 예고한 독자의 전율이란, 독자에게 존재론적 선택과 결의를 요구하는 하나의 기로이기도 하다.

독자는 존재의 진실로서의 참혹함을 추상적 이념의 세계로 곧잘 달아나는 지성의 힘에 기대어 왜곡하거나 순화하는 편을 택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의 진실로서의 참혹함을 순연히 그 자체로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을 택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 바람직하고 또 올바른 것인지 등에 관한 판단은 각자 알아서 내려야 한다. 그러나 그 참혹함을 견딜 수 있는 정신만이 존재론적으로 온전히 사유할 수 있다. 필자는 선을 추구하거나 반대로 악을 추구할 목적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필자는 다만, 필자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 존재론적으로 온전히 사유하기를 원할 뿐이다.

이 책은 한상연 교수가 하이데거 너머의 철학을 세상에 건네기 위해 철학자로서 해야만 했던 숙고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책에 대한 소개에 앞서, 왜 하이데거 너머의 철학이 필요했는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 이유는 하이데거의 철학은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으며, 20세기 최대의 철학자 하이데거조차도 자기-기만 혹은 의도적 타자-기만으로 인해 자신의 철학에서 배제해야만 했던 존재의 진실을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책을 소개해 보자. 이 책을 손에 들면 두 가지가 눈에 띌 것이다. 무언가 꺼림칙하게 다가오는 재판관들의 모습과 순간의 존재라는 제목이다. 우선은 먼저 제목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순간”은 물론 하이데거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순간(Augenblick), 즉 “본래적 현재로서의 순간”이며, 저자에 따르면, 이는 곧 “공동 현존재와의 관계를 양의적 함께-있음의 관계가 아니라 일의적 함께-있음의 관계로서 되찾으려는 결의의 순간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공동 현존재(타자)와의 관계를 일의적 함께-있음의 관계로서 되찾아야 할까? “양의적 함께-있음”이란 “서로를-위함의 가면 아래 서로를-대적함이 진행되는 관계”로서 함께-있음을 의미하고, 이러한 “서로를-대적함”이 나에게 죽음의 선고가 되기 마련인 탓이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근거로 나에게 죽음을 선고하는가? 나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자는 바로 타자이며, 죽음을 선고하는 그 근거는 바로 윤리와 규범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재판관이 되어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감시하며,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그 즉시 상대를 단죄하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 세상에서, 우리는 상대의 티끌만 한 잘못이라도 찾아서 그를 단죄하려고 하지 않는가. 연예인이나 소위 인플루언서가 어떤 잘못이나 실언을 하면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가 그들을 비난하고 심판한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히 그들의 사과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는 한다. 반대로 그들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어 보이면 그들에게 ‘사면’을 선포하기도 한다. 혹시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스스로 물어보라.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나는 그런 한심한 짓은 안 해”라는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는가? 떠올랐다면 당신 역시 다른 이들을 “한심한” 이들로 판결한 것이다. 이제 그림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제임스 엔소르는 이 그림에 “Les Bons Juges”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를 “훌륭한 재판관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현명한 재판관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에서는 이를 “The Good Judges”라고 번역했고, “Le Grand Juge”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선한 재판관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재판관들이 “훌륭한”지, “현명한”지 혹은 “선한”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분명한 것은 그림 속 사람들이 재판관들이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아마 이 책이 이 그림 속 재판관들을 통해 가리키고자 하는 것이 누구인지 짐작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너, 나, 우리,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보자. 결국, 이 책 『순간의 존재』에서 하이데거 너머의 철학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존재론적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우리 인간 현존재는 이러한 “규범적 의미연관의 체계에 다소간 종속된 정신으로 실존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러한 존재론적 진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이를 외면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진실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존재론적 진실을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철학적 사유는 어떤 것일까? 이 책을 ‘적확하게’ 이해한다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세창출판사]
[사진출처=세창출판사]

저자 한상연은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를 함께 전공한 철학자. 현 한국현대유럽철학회 회장 및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 철학과 예술, 문학은 근원적으로 하나라는 관점을 지니고 있다.

현재 가천대학교에서 예술철학, 문화철학, 종교철학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희망철학연구소에서 여러 철학자와 함께 인문학 살리기, 민주주의교육 등과 관련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시간과 윤리』, 『철학을 삼킨 예술』,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기쁨과 긍정의 종교』, 『공감의 존재론』, 『문학과 살/몸 존재론』, 『그림으로 보는 니체』, 『그림으로 보는 하이데거』 등이 있으며, 희망철학연구소의 철학자들과 함께 일반 시민을 위한 여러 철학교양도서를 공저했다.

인문학이란 삶을 보다 강하고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니체, 베르그송, 하이데거, 슐라이어마허, 사르트르, 푸코, 들뢰즈 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 왔다. 이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삶을 이론과 체계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전통 철학적 경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다.

괴테의 유명한 경구에 따르면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오직 저 푸른 생명의 나무뿐이다.” 삶과 존재란 본래 이론과 체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임을 잘 드러내는 경구이다.

독일 보쿰대학교에서 철학, 역사학, 독문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교에서 철학석사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논문에서는 니체와 바흐친의 철학을, 박사논문에서는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의 철학을 함께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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