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안상현 기자] “한 사람의 삶이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슬픔과 그리움, 기억의 빈틈은 사람의 말로 번역될 수 있을까.” 현실과 허구, 언어와 신체의 구획을 넘어, 인간의 씀과 삶에 바치는 찬란하고 지극한 헌사!

생의 고통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섬세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수놓아온 소설가 안윤의 데뷔작 『남겨진 이름들(문학동네, 2022.11.29.)』이 출간되었다.

제3회 박상륭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심사위원(강정, 김진수, 김진석, 배수아, 함성호)들로부터 “다가갈수록 자신만의 웅대한 고독 속에서 우주와 내통하는 듯한 내밀한 결기에 경외감이 들 정도”라는 찬탄을 받으며 안윤 소설세계의 시작을 알렸다.

그동안 발표한 단편소설들에서 떠난 이들을 향한 온기어린 애도로 독자들의 마음에 부드러운 진동을 일으켜온 작가는, 그 발원이 된 이 첫 장편소설에서 현실과 허구, 언어와 신체의 경계를 초월하여 삶과 사람을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보여준다.

『남겨진 이름들』은 언뜻 덧없어 보이지만 순간으로서 영원히 찬란한 우리의 삶을 탁월한 아포리즘과 감각적인 묘사로 포착해낸 수작이다. 작가는 치열하도록 정교한 문장으로 ‘탄생’ ‘죽음’ ‘사랑’ ‘이별’이라는 간명한 단어로 함축되곤 하는 일생의 사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부조해낸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알게 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시간이 지나 육체를 잃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가지만, 이야기는 그들의 이름을 간직한 채 우리 곁에 살아남고 있음을. ‘기록하는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깨달음으로 가득한 이 장편소설은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게 바치는 찬란하고 지극한 헌사로 다가온다.

“한치도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문장의 밀도, 그리고 마치 직접 현지인의 대화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묘사, 사물에 대한 섬세한 자각과 심리의 교직이 우아하게 펼쳐지는 수작이었다.

상처를 드러낼 때 덩달아 아파지고 짧은 환희를 토로할 때 뒷골이 서늘해지는 느낌 때문에 굉장히 더딘 독서가 됐지만, 삶의 소소하지만 내성 깊은 심연을 들여다봤다가 나온 뒤의 묵묵한 성찰들은 근래 보기 드문 내공이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다가갈수록 자신만의 웅대한 고독 속에서 우주와 내통하는 듯한 내밀한 결기에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_박상륭상 심사평 중에서

『남겨진 이름들』은 공책에 쓰인 이야기를 번역해 소개하는 액자식구성을 취한다. 이 형식은 낯선 타국의 한가운데로 초대받은 독자들이 언어를 초월하여 인간 보편의 감정을 자각하도록 이끈다.

소설이라는 형식이 이미 ‘허구’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안윤 작가는 허구 안에 또다른 허구를 배치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한 존재의 삶을 보다 여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실재의 나열이 아닌 상상으로 직조된 한 편의 이야기라고, 문장과 서사라는 씨실과 날실의 엮임에서 한 사람의 진정한 심연을 발견할 수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공책들 속의 이야기는 그애의 이야기이면서 그애의 이야기가 아니더구나. 일기도 소설도 아니었지. 글쎄, 그런 걸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만, 그 이야기는 그냥 그애 자체였지. 나지라 하미돕나 유수포바였어.

나는 이 기록을 모두 읽고 나서 윤, 너를 떠올렸다. 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니까. 이야기는 살아가고, 어떻게든 우리 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니.” _21쪽

『남겨진 이름들』은 이처럼 잊혀가는 이들을 활자의 영원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해내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와 우아한 분위기로 안윤 소설만의 미학을 확인하게 해준다.

일상의 평범한 장면들을 반짝이게 만드는 다정한 디테일, 고통의 순간에 문득 당도하는 깨달음은 소설 읽기의 경험을 한층 풍부하게 한다.

이별과 애도로 가득한 페이지들을 넘기면서도 슬픔을 넘어선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안윤의 문장은 때론 날카롭고 짙은 채도로, 때론 온화하고 묵직한 촉감으로 우리를 이야기 속에 오래도록 머물게 할 것이다.

[사진출처=문학동네]
[사진출처=문학동네]

저자 안윤은 2021년 장편소설 『남겨진 이름들』로 제3회 박상륭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방어가 제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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