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도영태 칼럼니스트] 지구상의 약 65억 인구를 100명으로 압축했을 때의 흥미있는 통계가 있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100명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죽기 일보 직전이며 43명은 위생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고, 18명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조차 마실 수 없다고 한다. 또한 18명은 1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하고 자가용을 보유한 자는 100명중 7명, 오직 12명만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고 그중 3명만이 인터넷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단 1명뿐이며 14명은 글조차 못읽는 다고 한다. 25명은 거취 할 곳조차 제대로 없으며 38명은 전쟁과 테러를 비롯한 기타 공포에 떨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는가? 이 세계에는 가난한 나라이면서 지진과 각종 재앙으로 신음하는 희망이 없는 나라가 무척 많다. 재난이나 사고는 왜 꼭 없는 집에서만 일어나는 지 가슴이 더 아프다. 그들 나라와 우리와는 거의 하늘과 땅 차이니 우리는 절대적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불과 50여 년 전 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그들과 같은 절망의 나라였다는 것을.

6.25의 폐허를 딛고 그동안 우리나라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전쟁후 최빈국가로서 미국의 구호물자에 의존하고 미군병사들이 먹다버린 음식을 끓여먹었던 나라가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걸쭉한 인물들을 배출하고 인구 5000만의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의 클럽에 도장을 찍고 당당히 어려운 국제사회를 도와주겠다고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변변한 무기도 시설도 없었던 우리 군은 자주국방의 의지를 불사르고 흑백텔레비전을 만드는 기술마저 일본으로부터 비웃음을 샀던 나라가 ‘국제 가전쇼’에서 일본을 제치고 전자제품과 스마트 기기 등을 석권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우리는 정말 이제 살만하고 행복한 나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기적을 일구어낸 우리나라 국민들의 단합된 열정과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일상에서의 자유로운 행복을 느끼는 부분이 너무 많다.

한반도라고 천재지변에서 예외일 수는 없지만 우린 사계절이 뚜렷하고 불모지대가 거의 없는 축복받은 땅에 살고 있다. 그 뿐인가? 어쨌든 우리는 민주주의를 달성했다. 밤새도록 자유분방하게 지낼 수 있고 새벽2~3시에도 젊은 여자가 편의점을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안정된 치안망도 갖추고 있다. 각계각층이 골고루 발달하여 자신의 꿈을 펼칠 길과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 있는 루트도 많이 생겼다.

상대적인 빈곤감은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박탈감은 없는 사회가 되었으니 우린 진정 행복 한 거다. 이렇게 주위를 돌아보면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렵고, 웃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우리는 진정 내안의 행복감을 잘 모르고 특히 일상의 행복을 주는 시스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게다가 이만하면 행복한데도 욕심과 바램이 부풀어 더 큰 행복을 갈망한다. 이제 조금 살림살이 나아졌다고,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고 아직 앉아서 할 일이 많은데 드러눕고 심지어 잠을 자려한다. 힘든 일은 좀처럼 하지 않으려고 기피하고,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과욕을 부리고, 타인의 것을 갈취해서라도 자신의 그릇된 행복의 배를 채우려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아직 불행하다고 한다. 행복해 지려하는 순간의 위선과 탐욕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이는 단숨에 그동안 쌓아 놓은 행복의 권리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 지금의 행복감은 과거의 성실한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며 미래의 행복추구권은 지속적인 노력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유지 될 수 있다. 지금 행복을 과소평가 하거나 크나 큰 기대감에 의욕을 떨어뜨리진 말자. 어쨌거나 세상은 굴러가고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행복을 지킬 것이다.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며 다시 떠오르는 희망의 한해를 맞이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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