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힘들어하며 괴로워합니다. 상담자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두 타당하고 그럴만한 이유도 충분히 있음을 공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문제가 더 힘겨워질 수도, 또는 조금 더 편안해질 수도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때 그 시선이 어떤 방향으로 향해 있으며 또한 얼마나 건강한가에 따라 나의 감정과 생각, 행동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사람의 눈을 통해서는 모든 사물과 배경이 검게 보이는 것처럼, 붉은색 선글라스를 낀 사람에게는 모든 사물과 배경이 붉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마다 자신들이 보고 있는 사물과 배경이 옳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통해, 붉은색 선글라스를 통해 보이는 사물과 배경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해석과 감정, 생각이라 할 수 있지요. 따라서 내가 끼고 있는 선글라스의 색깔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수록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하게 느껴질 수 있게 됩니다.

한 예화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언덕배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 저 멀리 산기슭에서부터 열심히 뛰어오는 아들의 모습을 산 아래 부엌 창문을 통해 어머니가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열심히 뛰어오는 아들이 배고프겠다고 생각하여 부지런히 저녁을 차리게 되었고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배고픈 아들을 위한 저녁밥을 앞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좋아할 아들을 기대한 어머니 앞에 아들은 몹시 언짢아하며 화를 내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이 모습에 섭섭한 어머니는 매우 화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과연 누가 잘못한 것일까요? 아들은 왜 자신을 위해 준비한 저녁밥을 앞에 두고 어머니에게 화를 내게 되었으며, 어머니는 왜 아들이 저녁밥을 먹고 싶어 한다고 미리 앞서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마도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 모두 잘못이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둘 다 잘못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심리상담은 나를 이해하고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해결하지 못해 왔었던 어려움에 대해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던 다양한 감정들을 오롯이, 명확히 자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된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 이해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면의 깊은 감정들이 가진 다양한 색깔을 발견하고 느끼게 되어감에 따라 덧씌워져 있었던 (안경의) 색깔 또한 점차 투명하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투명한 안경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향한 따스한 시선과 부드러운 수용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내 감정에 집중하여 내 모습을 오롯이 인정하고 수용해줄 때 자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커지게 됩니다. 그러한 신뢰와 믿음은 세상의 수많은 잣대와 기준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환경으로 인해 넘어지고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다시금 일어서는 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과거 상처로부터 힘들어했던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자신을 쓰담쓰담 토닥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삶과 주변의 환경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위 예화에서 언급된 아들과 어머니의 경우,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밥이 아닌 물을 먹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저녁밥을 준비했던 어머니에게 화를 느꼈던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아들을 위해 준비한 자신의 수고와 노력을 몰라준 아들이 야속하게 여겨 화가 났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아들과 어머니 각자의 분노는 모두 타당하며 잘못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들이 어머니의 수고와 노력을 먼저 헤아려 자신의 욕구를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가 준비한 저녁밥을 먼저 먹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또한 어머니도 자기 생각보다는 아들이 그때 상황이라면 밥보다는 물을 더 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먼저 헤아려 줄 수 있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상황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에 따라 그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도, 해석도 더 나아가 결과들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여유와 타인을 향한 배려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그대로 수용해주고 신뢰해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나를 향한 시선이 따뜻할 때 환경과 세상 또한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경험하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우리 삶을 크게 뒤흔드는 큰 위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자 테데스키(Tedeschi)와 칼훈(Calhoun)은 인간이 다양한 위기와 역경을 통해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성숙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보일 수 있다고 하면서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의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인간이 비록 과거 큰 어려움과 문제들을 경험하지만 때로는 그 안에서 나와 세상을 향한 더 큰 조망과 성숙으로의 변화를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소한 대인관계의 문제들에서부터 큰 외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 가운데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며 자신을 신뢰하며 지켜나갈 때 성장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향한 따스한 시선, 그것이 나를 바로 세우는 시작입니다.

글 : 김은미 한국상담심리학회 제46대 총무이사(상담심리사1급전문가 제3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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