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KBS 방송 속 다시 만난 인연들...회고의 밥상 차림

[한국강사신문 이미숙 기자] 공영방송 KBS는 지난 50년 한국인의 삶에 깊이 자리했다. 때로는 탐사보도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세상에 알리기도 하고, 때로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통해 따뜻한 이야기를 널리 퍼뜨리기도 한다. 마치 발 없는 맛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듯 지난 50년 텔레비전은 우리 삶에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을 실어 날랐다. 특히 지금은 맛볼 수 없어서 더 애틋한 그리움의 밥상처럼 시청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KBS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아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방송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가슴 속에 그리움을 품고 사는 이들의 사연을 듣고 그들이 추억을 꺼내어 차린 밥상을 만나본다.

[사진출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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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 고향을 마음에 그리다! –전라북도 진안군

호남의 지붕이라 불리는 진안고원. 높은 산세 사이로 자리한 용담호는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조성된 인공호수로 전북 지역에 식수와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중요한 상수원이다. 그러나 대규모의 댐 건설이 추진되면서 진안군 6개 읍면, 68개 마을이 수몰되어 이천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당시 KBS에서도 고향을 잃게 된 안타까운 수몰민의 심정을 방송으로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향을 잊을 수 없었던 수몰민들은 물 너머로나마 고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골 오지로 찾아들었는데. 타지로 이주했던 호암, 대방, 소방 마을의 수몰민들이 하나둘 돌아와 이룬 것이 지금의 호계마을! 고향을 잃은 아픔을 공유하며 그리움을 달래는 호계마을 주민들은 유독 돈독한 정을 자랑한다. 식사 시간에 서로를 부르지 않으면 서운할 정도란다. 고향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식사 자리는 향우회로 바뀐다는데. 그런 자리에 추억의 음식은 빠질 수가 없다!

용담호가 생기기 전, 마을에 흐르던 도랑은 주민들의 놀이터이자 식량창고였다. 솥 하나만 챙겨 나와 천렵한 물고기로 끓여 먹던 어죽은 정겨운 어린 시절의 맛! 고소한 서리태 순두부 역시 빠질 수 없는 호계리의 잔치 음식이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는 메주를 띄우듯 따뜻한 방에서 발효시켜 비지장으로 만든다. 호계마을이 생길 무렵,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자주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볶다가 비지장을 얹어서 끓여내면 쿰쿰한 향이 매력적인 비지장찌개 완성! 고향 근처에 와서야 숨통이 트인다는 호계리 주민들에게는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반가운 추억의 밥상을 만나본다.

[사진출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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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 많은 세월을 화폭에 그리다!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시 봉강면, 당산나무 뒤로 소담스레 자리한 집은 곳곳이 물감투성이다. 이곳은 14년 차 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흔여섯 김두엽 할머니의 집이자 작업공간! 벽을 가득 채운 도화지에는 할머니가 일상에서 본 풍경과 살아온 날들이 놀랍도록 생생한 색채로 기록되어 있다.

무료하던 83살의 어느 날, 달력 뒤에 무심코 그린 사과 한 알을 보고 화가인 아들 정현영 씨가 어머니의 재능을 칭찬한 것이 그림 인생의 시작이 되었다는데. 이후 아들의 칭찬과 지지 속에서 600여 장의 작품을 완성한 김두엽 할머니는 어느덧 수십 차례의 전시회를 연 화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덕에 김두엽 할머니는 KBS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지난날을 더듬어 화폭을 채워가는 김 할머니에게는 음식 역시 그림 재료라는데. 명절이나 제사 때에만 맛볼 수 있었던 귀한 꼬막장은 양념으로 올라간 파 한 조각까지 알록달록하게 그려 넣는다.

아낙이 머리 위에 생선 함지박을 이고 가는 정겨운 그림에는 가슴 아린 사연도 숨어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옛날, 임산부라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가족들 몰래 조기를 사 먹었다는 김 할머니. 시어머니의 불호령을 피해 숨어서 먹느라 아이들에게도 나눠주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 미안하단다. 서러운 시절 위로하듯 그림 속 함지박에는 올망졸망 그려진 조기가 한가득하다. 모진 세월을 환하고 따뜻한 풍경으로 그려내는 김두엽 할머니의 화폭 위를 거닐어본다.

등대를 지키던 아버지를 그리다! – 전라남도 신안군

섬 사이로 펼쳐진 너른 갯벌이 넉넉한 양식을 내어주는 신안군 압해도. 그곳에 사는 서미숙, 강민구 모자에게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오래된 흑백 TV. 등대관리원이던 미숙 씨의 아버지가 남도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근무하던 시절, 그의 곁을 지켜준 애장품이었다.

아버지의 유품이 고장 난 채로 방치된 것이 마음에 걸리던 차에 속 깊은 아들 민구 씨가 수리를 맡긴 것이다.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였던 흑백 TV를 다시 보게 되니, 가족과 떨어져 외딴섬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아버지가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다는 미숙 씨. 아버지의 입맛을 되짚어보며 추억이 담긴 음식을 장만해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근무하던 섬들은 지천이 먹거리인 보물창고였다. 특히 갯바위에서 막 채취해 끓인 물김국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는 미숙 씨. 햇김 철을 맞아 낙지물김국으로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 해 본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던 미숙 씨의 아버지는 낚시 솜씨도 대단했다는데. 우럭이며 농어를 끝없이 건져 올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단다. 그렇게 잡은 우럭을 말려서 쪄낸 반건조우럭찜은 아버지의 훌륭한 술안주이자 영양 만점인 밥반찬이었다. 어린 시절 섬에서 부모님과 쌓은 추억으로 한 상을 차려내고 나니 아버지와 함께하는 뜨끈한 밥 한 끼가 더욱 간절해진다는 미숙 씨. 바다 건너,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목포구등대의 불빛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한국인의 밥상> 598회 ‘50년 KBS 방송 속 다시 만난 인연들...회고의 밥상 차림’의 방송시간은 3월 2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이다.

* 한국인의 밥상 기본정보 - 국민배우 최불암(나이-1940.6.15.)의 진행으로 지역 대표 음식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역사, 그리고 음식문화 등을 아름다운 영상과 깊이 있는 취재를 통해 매주 한편의 '푸드멘터리'로 꾸며내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이다. 공식영상, 회차정보 등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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