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 출신의 국내 1호 의미공학자가 제안하는 성장 실천법

[한국강사신문 유재천 칼럼니스트] 나는 예민하다. 과거에는 굉장히 예민했다. 남의 눈치를 많이 봤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표현은 안 했지만 민감하게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불편했다. 다른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같았는데 나만 예민한 것 같았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이런 내가 싫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냥 그게 싫다고만 생각했다. 요동치는 내 마음을 위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으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름의 위안을 얻게 되었다. 나와 같이 예민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일부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잠시의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더 큰 자극이 오고 내가 온전치 못한 상황이었을 때는 마음에 태풍이 휘몰아쳤다. 시간이 갈수록 더 불편해졌다. 하지만 잘 참아낼 수 있다는 잘못된 자기 위안으로만 버텨냈다.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 잡지 못한 채 계속 버텨내고만 있었다.

배려가 중요하다고 한다. 나 역시 배려를 굉장히 중요한 인성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배려의 대상은 누구인가? 보통 바로 떠오르는 것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다. 물론 상대는 중요하다. 나와 마주 하거나 나의 옆에 지금 있는 사람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시점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배려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배려는 어떤가? 자신의 속은 곪아 터지기 직전인데 겨우겨우 참아내며 버티는 것이 자신에 대한 배려인가? 그렇게 참는 것이 또한 상대에 대한 배려일까?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참된 배려가 아니다. 또 눈치를 보고 있다.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말이 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는 잘못된 주문을 외우고 있다. 전혀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며 상황에 대해, 상대에 대해, 자신에 대해 잘못 된 배려를 하고 있다. 솔직한 표현을 해야 한다. 참고 버티며 거짓 된 표현을 하는 것은 참된 배려가 아니다.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상황에게도 말이다. 이는 마음의 요동에 지속적인 연료를 제공하고 축적시키며 잘못된 방향으로 요동의 진폭을 늘리는 셈이다.

잘못된 배려와 비슷하게 조심해야 할 것은 미리 단정 짓는 것이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그리고 시도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단정 짓거나 섣불리 판단하는 습관은 나쁘다. 잘못된 배려가 ‘그럴 것이다.’라는 잘못된 단정의 영향을 받는다고 볼 때, 미리 단정 짓는 습관은 고쳐야 한다. 상황을 제한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잘못 된 배려의 상황으로 만든다.

이렇게 나는 자신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본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아니었다. 상황을 조금 바꿔보기 위한 시도였다. 이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자신에게 참된 배려를 하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포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의 노력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일시적으로는 마음이 가라앉는 듯 했다. 하지만 더 큰 마음의 요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이 요동쳤다. 사실 노력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잘못된 노력으로 마음이 계속 요동친 것이다. 이러한 내부 상황에 성장의 지속성은커녕 성장의 싹이 자라날 자리 도 없었다.

‘어차피 한 판 붙기 위해 태어난 삶이 아닌가!’는 나의 좌우명이다. 1990년대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7막 7장』이라는 책에서 홍정욱 저자가 말했던 의지 중에 하나를 인용했다. 나는 이 말을 힘이 들 때마다 외쳤다. 나는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부딪치며 살았다. 그런데 나름 잘 해낸 시기도 이끌려가는 삶이었다. 성실을 강요하며 나에게 좌우명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괜한 채찍질만 해대고 있었다.

표면적인 성장은 계속 이뤄지는 듯 했다. 숫자로 이루어진 나이라는 것이 늘어갈 때 괜히 많이 성숙했다고 느꼈다. 내가 하는 의사결정은 모두 옳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관통해서 보면 계속 이 끌려가는 삶이었다. 마음의 요동들은 당연히 수반되는 작은 움직임일 뿐이라며 잘못된 위로를 했다. 어디에도 내가 주인인 요소가 없는데 보여주기만 하는 셈이었다. 그게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런 채찍질로 단기적인 결과는 계속 얻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들은 내가 원한 것이긴 했지만 사회로부터 먼저 주어진 후 내가 원한 것이었다. 내가 먼저 진정으로 원한 것들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강점을 부러워하고 흉내 내며 뒤쫓아 가려는 삶이었다. 그래서 이끌려갔던 것이다. 성실하긴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다. 성실한 하루하루의 일꾼일 뿐이었다.

※ 참고자료 : 의미공학자 유재천 코치[前 포스코(POSCO) 엔지니어]의 『성장, 의미로 실현하라 : 공돌이 출신의 국내 1호 의미공학자가 제안하는 성장 실천법(행복에너지, 2017)』

 

유재천 칼럼니스트는 의미공학연구소 대표로서 조직과 개인의 행복한 성장을 돕는 코치로 활동 중이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후 포스코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으며 경영대학원에서 리더십과 코칭 MBA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스타강사 12인의 미래계획서 『강사 트렌드 코리아 2019(지식공감, 2018.10.9)』(공저)를 비롯해 『성장, 의미로 실현하라』, 『여행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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