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해 지혜를 얻는 아나운서 '책으로 아나'

고래_천명관
고래_천명관

[한국강사신문 이선영 칼럼니스트] p.195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난 그냥 보면 알아요. 과연 금복의 확신대로 그녀가 가려 뽑은 일꾼들은 모두 신실하고 부지런해 속을 썩이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몇 년 뒤, 그녀는 단 한 번의 착오로 인해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인물을 한명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믿음의 대가였다.

제 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 2023 맨부커상 최종후보작이기도 했던 고래. 예전 한 유튜버의 엄청 재밌다는 리뷰를 듣고 그런가보다...하다 최근 뉴스에서 맨부커상 후보로 또 떠들썩해서 이제는 봐야겠다하고 잡은 책이다.

평론가도 소설가도...전반적인 평은 특별하고. 독특하다!

그리고 읽어버린 나의 평은??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걱정, 정치인 걱정이라 했던가. 이제는 거기에 더해 소설 속 인물까지 걱정하는 상태가 돼 버렸다. 책 속 인물들이 마음에 남아 아려오기도 하고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저 사람 속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잠시 멈춰 보게 됐다.

소설 초반 자신의 두 딸과 남편을 독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여죄수가 한 말이 나온다.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주인공 춘희는 감옥에서 나와 황폐해진 자신의 삶의 터전을 보게 되서야 저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인생이란 죄수가 주워들은 저 말이 다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쉽게 평을 못하겠는 건 “독자여 000 잊은 건 아니겠지?” 하며 불현듯 튀어나오는 작가가 신경이 쓰여서다. 작가는 이야기 속으로 깊이 집어넣었다가 갑자기 정신 차리라는 듯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마음대로 평을 하는 사람들을 웃음소재로 삼는 것도 같았다.

주인공 춘희는 여성이라고 믿기 어려운 외모에 100kg을 넘긴 거구에 벙어리다. 그녀의 어머니 금복은 알 수 없는 살 냄새를 풍기는 오묘한 매력이 차고 넘쳐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여자다.

모녀가 달라도 너무 다른데. 그것은 금복의 남편 때문이다.

금복의 어린 시절 얘기부터 들어가야 하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금복을 낳다가 죽었고 그런 금복을 홀로 키우는 아버지는 금욕생활을 하며 힘들어하고 점차 여자의 모습을 갖춰가는 딸을 보며 또 힘들어하다 반쯤 미쳐가고....금복을 공연히 쥐 잡듯이 잡아 금복은 바닷가 도시에서 산골로 들어오는 생선장수의 삼륜차를 타고 아버지에게서 탈출한다.

산골을 벗어나 바닷가 도시에 홀로 남겨진 금복은 ‘고래’를 처음 발견하고 감탄하는데. 고래를 보며 어떤 엄청난 도전? 영감? 을 받게 된다.

작가는 금복에게 너무 자유로운 영혼을 부여해서 만나는 남자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게 해주고 사업수단은 어찌나 좋은지 순식간에 부유함도 만들어내는 수완 좋은 캐릭터로 만들었다. 나이차이가 많은 생선장수와 함께 살다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준 춘희의 아버지인 걱정과 만나게 된다. 이후 무협지에 나올 것 같은 칼자국과 사귀다가 벽돌공장을 세운 문과 만나게 되는 등....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는 금복! 금복을 스쳐간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야기들을 어찌나 궁금하게 잘 썼는지 글인지 동네사람들의 수군거림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빠져들게 만든다.

책 말미에 작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작가는 묘사에 능했다 했고, 군대에서 읽었던 책은 전두환 정권 시절 불온서적이라 했던 책들 이어서 군대에서 의식화가 돼서 나왔다고 했는데 아무튼 그간의 읽고 보고 들은 수 많은 작가 천명관이 표현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288.... 빨갱이들의 불법적인 파업행위를 증언해줄 수도 있다며 특유의 언변으로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의 뛰어난 말솜씨는 그곳에서 전혀 통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더욱 불리하게 작용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종결어미조차 생략된 짧고 무시무시한 경구 한마디 때문이었다.

말 많으면 공산당.

p.311 재판정은 그저 피고의 운명을 시험하는 무대였을 뿐 정의와는 애초에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것이다. 장군의 시대는 대게 그런 식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그것은 이념의 법칙이었다. 그것은 무지의 법칙이었다. 수많은 법칙을 들며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을 보며 주어진 대로 생각하는 주입식 뇌와 시스템화 된 삶을 비꼬는 것 같아 통쾌하면서도 결국 나도 그런 법칙의 노예같아 돌아보게됐다. 

p.271 언젠가 바닷가에서 물을 뿜는 푸른 고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죽음을 이긴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는 끝없이 거대함에 매료되었으며,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다.

p.415 진실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그 모든 호들갑은 우리의 주인공 춘희의 인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졌다. 우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어떤 삶을 원했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우리와 달랐으며 다르다는 이유로 평생 고독 속에서 살았다.

춘희를 벙어리로 설정한건 무슨 이유였을까. 말 못하고 떨어지는 지능으로 자신의 아이를 낳기까지..그리고 모성본능으로 아이를 살리려했지만 어찌하지 못하는 그 막막함이 마음에 얹혔다. 오랜만에 글에 취하고 내용에 빠져서 굳이 무슨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상관없을 소설을 만났다. 망망대해 같은 삶이 잔잔한 듯 보이지만 그 속을 누가 알까?

현실이 더 소설같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이선영 칼럼니스트는 10년간 한국도로공사 교통캐스터로 일하다 현재는 YTN에서 화면해설 방송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다. 또한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에서 운영하는 청렴라이브 공연 진행 및 다양한 행사와 유튜브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하고 있다. 공기업대상 프레젠테이션 스피치 수업 및 새터민(북한이탈주민) 대상 언어교정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수상경력으로 2018년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컨텐츠 공모전에서 강연부문 우수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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