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률' 표지 [사진출처=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대명률' 표지 [사진출처=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국강사신문 한상형 기자] 누군가를 말로 헐뜯거나 모욕하는 행위는 조선시대에도 처벌 대상이었으며, 경우에 따라 중형으로 다스린 것으로 나타났다.

4일 학계에 따르면 조선시대사를 전공한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조선시대 매리(罵詈) 죄를 분석한 '조선시대 매리 범죄의 처벌과 입법 양상' 연구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매리죄는 폭언이나 심한 비방으로 모욕을 가하는 행위로, 오늘날의 모욕죄와 비슷하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중국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에는 일반인 간의 매리, 관원에 대한 매리, 가족·친족 관계의 매리 행위와 그에 대한 처벌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심 교수는 "매리 행위는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폭행보다는 형량이 가볍지만 최고형인 사형, 정확히는 교수형에 해당하는 교형(絞刑·목을 옭아매어 죽이는 형벌)으로 다스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손이 부모, 조부모에게 매리 행위를 하거나 노비가 주인에게 모욕을 준 사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세종실록 1438년 10월 기록에 따르면 예문관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지낸 이행(1352∼1432)의 아들 이적은 과거 부친에게 욕설하는 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져 처벌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의금부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모욕한 죄를 물어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영의정이었던 황희(1363∼1452)는 부자간의 사이가 생전 회복되었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호소해야 하는 친고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참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세종(재위 1418∼1450)은 이적에게 장 100대를 내리고 함길도(함경도)로 유배 보내라고 결정했다.

사형보다는 수위가 낮았지만 약 3천리 즉, 약 1천180㎞ 떨어진 지역으로 보내는 무거운 처벌이었다. 이적은 이 일이 불거진 지 12년이 지나서야 유배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매리 행위는 특히 신분제 사회에서 엄중하게 적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중종(재위 1506∼1544) 30년 때인 1535년 1월 21일 실록은 '윤손'이라는 노비가 주인을 욕하고 업신여기며 죽이겠다고 말했다가 실제 처형됐다고 기록한다.

심 교수는 "사건이 발생한 지역과 구체적인 내용을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욕설하고 주인에게 극언했기에 정상 참작이나 감형 없이 교형으로 처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 왕조에서 노비의 매리 행위는 무겁게 처벌했다"며 "신분 질서가 강고하게 유지되던 당시에 이는 분수와 명분을 해치는 행위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고 봤다.

그는 매리죄와 관련해 입법 보완 노력이 있었던 점을 언급하면서도 "조선 후기 신분 질서의 이완 속에서 하층민의 기강 해이를 막기 위해 처벌 형량을 좀 더 촘촘히 신설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고 짚었다.

심 교수는 실제 조선 사회에서 매리죄는 더 많이 다뤄졌으리라 봤다.

그는 "매리죄 특성상 조정에 보고되지 않고 (군·현 단위) 수령 차원에서 처리된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이라며 향후 조선시대 형사법 체계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내는 학술지 '한국학' 171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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