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의 등불이 된 아버지의 편지

[한국강사신문 윤상모 칼럼니스트] 2017년 11월 한 종편 TV에서 감옥을 소재로 한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방영해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주인공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입성을 목전에 둔 최정상급 투수다. 어느 날 여동생 집에 침입한 괴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하게 되고 재판정에 서게 된다. 주인공은 정당방위로 인정되어 곧 풀려 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괴한이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되자 주인공은 실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갇힌다. 감옥에 갇힌 주인공은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었던 야구를 포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교도관인 친구의 도움으로 감옥 안에서 투구 연습을 하게 되고 출소 후에 재기에 성공한다. 제작진은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감옥에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호기심에서 이 드라마가 만들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보통의 사람이 정말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된다면?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구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감옥에서 운동을 그것도 투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상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성이 희박한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한 가지 질문이 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1930년 인도에 사는 소녀 인디라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것은 인디라의 열세 번째 생일인 10월 26일에 쓴 편지였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나이니 형무소에 수감 중인 인디라의 아버지, J. 네루였다. 나이니 형무소는 인도에서 영국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독립투사들이 주로 갇혀있는 곳이었다. 인디라가 편지를 받은 바로 다음 해에는 인디라의 어머니도 같은 죄명으로 투옥되고 얼마 뒤엔 인디라의 할아버지마저 감옥에 갇힌다. 네루는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인디라에게 감옥에 있는 3년 동안 편지를 보냈다. 네루의 편지는 보통의 아버지들처럼 딸의 어린 시절, 함께 나눈 대화 그리고 즐거웠던 추억들로 시작한다. 네루는 자신의 외동딸이 보통의 아이와는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네루는 인디라가 좋아하는 역사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네루는 첫 번째 편지에서 중국 당나라의 고승, 현장법사(삼장법사)가 불경을 구하기 위해 사막을 건너고 험준한 산맥을 넘어 인도까지 찾아왔던 이야기로 시작했다. 네루는 인디라가 역사적인 사건에 감동하던 모습을 떠올려 주었고 그녀가 태어난 1917년의 역사적 의미도 상기 시켜주었다.

“네가 처음 잔다르크 이야기를 읽고 얼마나 매혹되었는가를, 그리고 그녀처럼 활약하고자 하는 너의 간절한 소망을 채 억누르지 못하던 것을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네가 태어난 그 해에 레닌은 러시아와 시베리아 전체를 뒤바꾼 혁명을 시작했다.”

역사에 대한 네루의 해박한 지식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 중국의 역사 등 유럽과 아시아, 고대와 근대, 태평양과 대서양을 물결치듯 넘나들었다.

인디라 간디와 네루 <사진=브런치>

네루의 집안은 인도 카스트 중 최상층인 브라만 계급이었다.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 네루는 대부분의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처럼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네루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 인도로 돌아왔다. 영국인들과의 큰 문제만 없다면 네루에겐 평탄하고 보장된 미래가 있었다. 어느 날 네루는 자신과 비슷한 과정을 거쳤지만 인도의 독립 운동에 뛰어든 전직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 그 운명적인 만남 이후 네루는 자신이 꿈꾸던 미래와 정반대의 길을 가게 된다.

네루, 영국 유학시절 <사진=위키백과>

그 전직 변호사의 이름은 마하트마 간디였다. 네루는 간디와 함께 인도의 독립 운동을 주도했고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할 때 까지 아홉 번이나 투옥된다. 간디가 비폭력 저항을 표방한 반면 네루는 적극적인 파업과 투쟁의 방법으로 독립 운동을 주도했다.

네루는 인디라가 자기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을 원하진 않았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인디라 역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길 원했다.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네루는 인디라가 역사가 주는 교훈을 통해 스스로 깨닫기를 원했다. 그런 염원을 담아 전 세계의 역사를 편지지에 옮겨 적었다. 네루는 감옥에 있던 1930년 10월 26일부터 1933년 9월 8일까지 196 통의 편지를 인다라에게 보냈다. 이 편지들은 「세계사 편력」이라는 제목으로 세 권의 책으로 출간된다.

네루는 인디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인도처럼 식민지가 된 동방의 작은 나라를 바라보며 느낀 자신의 측은한 마음을 글로 전하기도 했다.

가엾은 작은 나라 코리아는 오늘날 거의 잊혀지고 있다. 일본에 합병되어 그 제국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리아는 지금도 자유를 꿈꾸며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 1932년 5월 8일자 편지 중에서

네루는 인도가 독립하게 되자 인도의 초대 총리로 선출된다. 네루가 총리가 되고 가장 먼저 이룬 성과는 수 천 년 간 인도 사회를 지배해온 신분 제도, ‘카스트’를 법적으로 철폐한 것이다. 물론 인도의 현실은 서로의 묵인 하에 카스트 제도가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최상층 계급인 브라만 출신의 네루가 법을 제정해 사람의 차별을 금지한 것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네루와 마하트마 간디 <사진=중앙일보>

인디라는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 힘들고 외로울 때 아버지의 편지를 다시 꺼내 보았다.

“지금 인도 사람들은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이 위대한 역사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분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설교가 아니라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숨기려 하지 말거라. 무엇을 숨기려 하면 언제나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항상 용감하거라. 그러면 다른 일들은 자연히 길이 열리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만일 네가 용감하다면 두려울 것도 없을 것이요, 부끄러울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인디라는 인도와 세계의 역사를 더 깊이 공부하고자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 역사학을 전공하게 된다. 인도로 돌아와서는 네루처럼 인도의 독립 운동에 뛰어 들었다. 인디라 역시 아버지와 같은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자 인디라는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인디라는 1966년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되고 현재 까지도 유일한 여성 총리로 기록되고 있다.

네루가 혼자 된 열세 살의 딸 인디라에게 보낸 196 통의 편지는 인디라의 앞길을 밝혀준 등불이었고 삶의 방향을 알려 준 일생 동안의 나침반이었다.

※ 참고자료 : 「세계사 편력」 J. 네루, 일빛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