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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도영태 칼럼니스트] 30대 초반의 매우 촉망받는 공기업 직원이 있었다. 그는 일도 잘하고 품행도 좋아 윗사람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조직과 부서에 얽매여 고정급을 받는 것보다 일한 만큼 성과를 받는 생활을 하고 싶다며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외국계 보험회사 영업사원이 되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극구 말리고 아쉬워했으나 그의 결심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박수 칠 때 당당하게 회사를 떠나는 그를 보고 ‘용기 있는 대장부’라고 부러워하는 직원도 있었고, 그 역시 잘 나갈 때 오히려 멋지게 박차고 나오는 것 같아 뿌듯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 그는 힘겹게 보험 설계사 일을 하며 지난날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 보험과 같은 금융회사는 고객에게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 결코 박수를 쳐 주지 않는다. 이전 직장에서의 안정적인 수익원과 화려한 이력은 단지 추억일 뿐, 그는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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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지금 잘나가는 사람들은 박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좋은 직장, 업무에 대한 영향력, 높은 급여, 상사의 총애 중 어느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박수갈채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 칠 때 떠난다’며 괜한 객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남들이 박수 쳐 줄 때 왜 떠나는가?” “다른 곳에 가면 그만큼 박수를 받을 수 있는가?”라고.

지금이 전성기이고 박수를 받고 있는 시기라면 박수칠 때 절대 떠나지 말고 오히려 이를 즐겨야 한다. 그러면서 더 크게 성취하고 더 많이 조직에 기여하면 된다. 뚜렷한 목표도 없이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들 다 좋다는 자리를 괜한 명분 따지며 거부하고, 한창 일이 잘 되려는 시기에 불현 듯 변화를 검토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닌지 자문해 보자.

좀 더 나은 보수를 위해 그 좋은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일반회사에 가서 고생하면서 결국 일찍 사직하여 예전직장의 향수에 젖고 동료들이 잘나가는 것을 부러워 해봐야 이미 지나간 버스일 뿐이다.

직장이든 조직이든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곳에서 박수를 받을 때가 제일 행복한 시기이다. 지금 박수를 쳐 주는 이곳만큼 최상인 곳도 없다. 특별한 뭔가가 없는 한, 지금 이곳에서 쌓아온 명성은 신용카드처럼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통용되지 않는다.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카드를 발급받아 새롭게 시작해야 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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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칠 때 멋들어지게 떠나는 화려한 장면은 정말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대개 미래에 대한 비전과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론이 없이 자신의 어떠한 행동이 지금 잘 나가니까 막연히 더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치밀한 로드맵이 없는 한 현재의 박수가 계속 이어질 리는 만무하다. 하다못해 대기업에서 하향지원하여 중견기업으로 간들 박수릴레이는 그곳에 가서 적응해보아야 아는 것이다. 지금의 박수는 철저히 현재 상황, 현 조직에서만 통용되는 ‘내수용 박수’이기에 박수칠 때 더 나은 박수갈채를 바라며 움직이는 결정은 철저히 유보해야만 한다. 게다가 어디를 가도 조직은 거기서 거기다.

만약 진짜로 떠나고 싶다면 박수가 적어질 때 떠나도록 하자. 박수가 아예 없을 때 떠나는 것은 초라한 변신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생활하면서 얼마든지 가늠할 수가 있다. 내가 지금 변신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애써 얻은 긍정적 평가와 생활의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영화의 장면을 연상하며 박수칠 때 폼 나게 떠나는 사람은 낯설고 험한 곳에 가서 생고생을 하며 깨닫게 될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아니라 ‘열심이 일한 당신 박수를 즐겨라’이다. 진정 폼 나게 사는 사람은 박수 칠 때는 끝까지 남아서 박수와 더불어 달콤함을 누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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