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유라 칼럼니스트]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내가 직장에 다니던 시절, 윗사람이 퇴근하지 않으면 일이 없어도 눈치 보느라 집에 가지 못하는 이상한 문화가 있었다. 열심히 하는 지점처럼 보이기 위해, 직원들이 몇 시까지 근무했는지 전산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날들이 안타까웠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이어갈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경력단절을 겪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함께하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너무도 가혹하다.

야근을 하지 않아도 퇴근 후 집에 오면 빨라야 저녁 8시였고, 저녁을 준비하고 나면 이미 9시였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 금세 밤 11시가 되었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아침 7시. 다시 서둘러 출근해야 할 시간이었다. 회사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려니, 체력적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어떤 날은 알람을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해서 혼쭐이 나기도 했고, 고작 30분밖에 안 되는 점심시간에 유니폼을 갈아입는 로커에서 쪼그려 잠을 청한 날도 많았다. 은행원은 쉴 새 없이 손님을 응대하느라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극한직업이다. 바쁠 때는 하루에 100명의 손님을 맞은 적도 있으니, 그야말로 기진맥진해서 집에 돌아가는 날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은행 일은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사람들과 돈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제법 즐거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한 만큼 차곡차곡 돈이 쌓이고 있었다. 어른의 삶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만큼의 보람과 성취감도 느낄 수 있는 세계였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남편과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초보 은행원은 퇴근 후 집에서 만날 확률이 60%밖에 되지 않았다. 이 안타까운 신혼부부 생활의 유일한 장점이었다면, 쓸 시간이 없어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게 신혼의 즐거움을 일부 포기하고 돈 모으는 재미로 지냈다.

그런데 그토록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열심히 모았던 그 돈을 펀드 투자 실패로 절반 이상 잃고 말았다. 회사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상상과는 다른 결혼 이후의 삶에 가끔 맥이 빠져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지금은 이렇게 힘들어도, 조금만 지나면 돈도 많이 모으고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고 만 것이다.

※ 참고자료 : 김유라의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 : 돈도, 시간도 없지만 궁색하게 살긴 싫었다(차이정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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