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한국강사신문 김재은 칼럼니스트]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인가. 아니 허전함이 곰삭아서 그리움이 되어가는 것이겠지. 이맘때쯤이면 고향집 뜰에 대추가 익어가고, 대문 옆 담벼락엔 능소화가 끝물일 것이고, 텃밭에는 참깨가 베어지고 들깨가 한창일 것이다. 처서가 막 지났으니 가을이 오는 것은 불어오는 바람처럼 자연스러우리라.

그런데 눈부신 가을로 접어드는 이 좋은 때에 고향집의 백구가 떠났다. 오랜 시간 고향집, 아니 고향의 부모님을 지켜온 듬직한 녀석이 어디론가 떠난 것이다. 얼마 전 주말, 목 끈을 새로 갈아줬는데 그게 풀린 것이다. 어디로 갔을까? 벌써 열흘이 지났으니 기다려도 별 소용이 없을듯 하다. 고향집에 가면 반가워 꼬리를 치며 뛰어오르던 그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백구가 떠나니 집안이 텅 빈 것 같다는 전화 속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서운함이 시냇물처럼 졸졸졸 흘러나온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니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디 그러지 않겠는가? 10년 가까이 함께 했으니 어쩌면 당신들껜 멀리 있는 자식보다 더 살가운 존재였으리라. 개가 집을 나가면 좋은 일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당신 자신에게 전하는 위로임을 어찌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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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농사를 지어온 부모님은 백구는 물론 집에서 키우는 닭이며 토끼 등을 허투루 대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뜰 안과 텃밭의 상치며 오이, 호박 등의 작물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이며 살아오셨다. 그것들은 모두가 말 그대로 생명이었고. 생명을 유지해 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밥 한 톨, 푸성귀 하나라도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언제부터인가 대량소비의 도시적 문화가 우리의 삶이 되면서 얼마나 많은 음식물이 버려지고 있는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버려지는 것들만 절약할 수 있어도 수십조 원이 될 거라는 통계도 있다. 이런 내용을 고향의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아마 한숨이 절로 나올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의 염려를 자아낸 살충제 계란 파동등도 따지고 보면 소중한 먹거리에 대한 인식과 철학이 부족한 탓이 클 것이다. 대량소비를 위한 집단사육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는 문제이다. 생명을 경시하는 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때이다. 아마 지금이야말로 농군의 마음, 백구를 향한 부모님의 마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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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백구의 떠남으로 80대 중후반의 부모님의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까 살짝 염려가 일어난다. 물론 90년 가까운 생을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 오신 분들이라 잘 견뎌낼 것이라 믿지만. 보고 싶은 백구야!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든지 무탈하길 빈다. 오수의 개처럼 충견은 아니었지만 너는 고향집 뜰 안의 대추나무나 감나무처럼 그대로 고향집의 일부였음에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고향집에 가면 백구가 살던 모퉁이의 작은 집을 어찌 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 출처 : 교차로 신문 ‘아름다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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