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eekRoad>

[한국강사신문 정헌희 기자] 이 책 『유라시아 일주 자전거 편지(도서출판 금토)』는 3년 5개월 동안 중국의 IT미디어 <테크노드>의 영문 기자였던 유채원이 상해에서 런던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친구와 가족에게 쓴 엽서와 편지 내용을 모은 것이다.

자전거 여행 기간은 2018년 6월 2일부터 2019년 1월 26일까지였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90% 이상 현지인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 소개하고 있다. 여행 자금은 중국, 대만, 한국의 14개 기업으로부터 스폰서를 받았다.

자전거 여행을 계획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저는 그동안 스타트업 전문 기자로서 가장 빠른 업계의 기술과 트렌드를 전하기 위해 비행기로 출장을 다니며 기사를 쓰는 생활을 반복했어요. 그러다 가끔 이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고 영화 2~3편을 보며 목적지에 도착하면 문화권이 완전히 달라져 있거든요. 중국인과 영국인은 생김새나 태도에 너무 차이가 커요. 이런 문화적 차이가 벌어지는 데에는 반드시 그만한 물리적 거리가 있기 때문인데 현대에는 빠른 교통수단과 통신기술로 인해 이런 물리적 거리가 너무나 가까워져 버렸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이 먼 물리적 거리를 천천히 이동하면서 문화가 변해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자전거를 통해서 가능하면 느린 속도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었어요.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대륙은 도대체 얼마나 큰 걸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고장에서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자전거를 타고 가며 최대한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어요.”

중앙아시아에서는 주로 민박을 하고, 터키와 유럽에서는 ‘카우치 서핑’과 ‘웜 샤워’를 이용해 숙식을 해결했다. 동양과 서양을 잇는 세상 사람들의 깊은 인정과 다양한 향기를 체험했다.

“카자흐스탄 황야를 가로지르다 숲속에서 쉬고 있는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던 위구르 가족에게 둘러싸였어요. 같이 사진만 찍고 떠나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귀여운 표정으로 열심히 졸라서 집에 같이 가게 되었어요. 열두 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사는 집에서 저는 신장 투루판의 벽화 속에서 웃고 있던 위구르 사람들을 진짜로 만났어요.

아이들은 맑고 순수하고, 아빠는 밝고 유쾌하며, 초록 히잡을 쓴 엄마는 유머러스하고 인자했어요. 제가 카자흐어를 모르는 만큼 그들도 영어를 몰랐으나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표정과 몸짓으로 많은 대화를 이어갔고, 마음이 통해 눈빛만으로도 쾌활하게 웃을 수 있었어요.

그 집 부모님은 나중에 꼭 다시 와야 한다고 하실 만큼 저를 좋아하셨어요. 닷새나 신세 지고 떠나는 날 가족 모두와 포옹하고 집을 나선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엄마가 보낸 왓츠앱에 러시아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하느님께서 너를 보호해주실 거야. 길 조심해서 가렴. 우리를 잊지 마라. 모든 게 잘 되기를 빈다.’ 구글 번역기로 읽으며 가슴이 뭉클했어요.”

저자는 터키에서 만난 두 이란 자전거여행자에게서 받은 감명도 털어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흑해 해변을 달리는데 이란에서 온 두 남자 자전거여행자가 저를 불렀어요. 흑해 옆에 작은 집을 짓고 카우치 서핑을 하는 터키 사람 무랏의 집 앞이었어요. 두 남자는 그들이 찾아가는 도시마다 이란 전통의상을 입고, 이란 전통춤을 추며, 이것을 영상으로 찍는다고 했어요.

그 영상을 보고 감탄하자 그들은 가방에서 메시지가 적힌 천을 꺼냈어요. ‘춤을 추면 전쟁이 줄어든다(More dance less war).’ 이 강렬한 표어는 정말 내 가슴을 때렸어요. 그들은 세계가 이란을 어떻게 보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힘들었던 일도 많았다. 그리스에서는 오토바이를 탄 치한을 만나기도 했다. 몬테네그로에서는 핸드폰이 고장 나 두 번이나 수리점을 찾았으나 고칠 수 없어서 7일 동안 핸드폰 없이 길거리 표지판에만 의존해 달려야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길에 세워둔 자전거를 도난당하고 찾지 못해 중고 자전거를 사서 여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세상은 정말 따뜻한 사람들로 가득해요. 사람들이 제일 친절한 나라는 터키였어요. 도무지 숙소가 없으면 저는 현지인 민가의 문을 두드렸는데, 중국에서는 하루 10번, 카자흐스탄에서는 5번을 거절당했으나 터키에서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어요.

그들이 먼저 손짓해 밥 먹으라 하고, 밥을 먹으면 자고 가라고 했거든요. 터키 사람들은 저를 가까운 친척처럼 대했어요. 많은 사람이 아주 흔하게 말했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팔을 잃으셨어’ 또는 ‘6.25때 전사하셨지’. 이런 말을 들으면서 이 나라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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