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유라 칼럼니스트] 2013년 2월 다음 ‘짠돌이’ 카페에서 ‘슈퍼짠 선발대회’가 개최되었다. 회원들 중 가장 알뜰한 사람을 뽑는 대회였다. 1차 예선에 통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거쳐 최종 순위를 매겼다. 대상 수상자로 ‘복부인’이라는 나의 닉네임이 발표되었다. 사실 복부인은 ‘복이 들어오는 부인’이라는 의미로 정한 것이었는데, 이 단어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이 있다는 것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별 생각 없이 썼던 닉네임이 나를 지칭하는 브랜드처럼 된 후에야 다른 이름을 고민해볼 걸 그랬나, 후회했다.

어쨌든 그날 이후 내 글이 카페 메인에 노출되어 많은 회원들이 읽는 인기글이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수상하자마자 방송국에서 연락이 빗발쳤다는 것이다. 나는 대상 상품인 50만원 상품권에만 욕심이 있었지, 방송 출연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방송을 타서 유명해지겠다거나 방송인으로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북테크를 하면서 나중에는 책도 쓰고, 재테크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꿨지만, 방송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내가 유명해진다고 가지고 있는 부동산이 더 오르는 것도 아니고, 괜히 얼굴이 알려지면 불편하기만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TV에 출연한 이유는 과거의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였다.

‘나 같은 사람도 했으니, 당신도 분명 할 수 있다’고. 거기에 더해 절약하는 삶이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절약, 짠순이라고 하면 다들 아등바등 궁핍하게 사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실제로 그렇긴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부분에 한해서다. 생활이 조금 팍팍하긴 하지만, 그로 인해 더 나은 미래를 만날 거라는 희망과 각오가 있기에 그 어느 부자보다 마음만은 풍족하다. 그걸 알려주고 싶었고, 그렇게 TV에 출연하게 되었다. 

망가진 채 간신히 빨래를 지탱하고 있는 우리집 빨래 건조대는 마치 피사의 사탑 같다며 방송에 소개됐다. 우리집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던 고물상 아주머니도 덩달아 TV에 두 번이나 출연하셨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일반 대형마트는 잘 가지 않고, 재래시장이나 농수산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첨가물이 든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은 생협 자연드림에서 주로 주문한다. 마트보다 시장을 주로 찾는 모습이 요즘 주부와 다르다고 느꼈는지, 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해 요리해서 먹는 장면을 방송에서 자주 찍곤 했다.

예상은 했지만 방송은 생각보다 더욱 어려웠다. 3만원으로 장을 봐서 셋째아이 백일상을 차리는 미션을 수행한 적도 있다. 대전 오정동 농수산시장을 카메라와 함께 누볐다. 한겨울 집 근처에 있던 한민시장에서 셋째아이를 포대기로 업은 채 장을 보는 장면도 찍었다. 아이도 데리고 다녀야 하고, 장바구니도 내가 들어야 하고, 중간에 멘트까지 해야 하니 고역이었다. 3분 방송을 위해 3시간 이상 촬영해야 했고, 3시간을 촬영하려면 카메라 감독과 6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야 했다. ‘역시 방송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침마당>에 나갔을 때는 이금희 아나운서가 “이 옷은 어디서 났어요?”라고 물어왔다. 워낙 유명한 방송이고 출연료도 30만원이나 준다기에 큰맘 먹고 구입한 블라우스였다. 그런데 왠지 짠순이로 TV에 나갔는데 돈 주고 샀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빌렸어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절약에 대해 이야기하러 방송에 나가면서 비싼 옷을 사 입은 것도 부끄러웠는데, 거짓말까지 한 것은 더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는 방송에서든 일상에서든 절대 스스로 부끄러운 언행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고 팽현숙 씨가 패널로 출연한 <EBS 부모>에도 출연했었다. 재테크 열심히 한 엄마도 EBS에 나갈 수 있구나,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특히 팽현숙 씨를 만나서 반가웠다. 내가 예전에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고 하니 무척 좋아해주셨다. 자기 젊었을 때를 보는 것 같다며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런데 촬영 도중 아이들을 키우면서 돈을 아끼느라 힘들었겠다는 사회자의 이야기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예전에 내가 살던 빌라는 LPG 보일러로 물을 데워 써야 했다. 온수 보일러를 설치하던 날, 기사님이 ‘LPG로 물을 데우면 가스비 엄청 나와요. 여기 못살아. 빨리 다른 데로 이사 가요’라고 하셨다. 그 말에 겁이 나 온수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한겨울에도 샤워할 때가 아니면 온수를 틀지 않았다. 화장실은 겨울이면 밖보다 더 추웠는데, 겨울철 찬물에 손을 씻고 나면 아이들 손이 빨갛게 되었다. 내 손이야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든 부르터서 피가 나든 상관없지만,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때가 떠오르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가 고생하는 것은 다 괜찮았지만 늘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언제나 마음 한편에 자리했던 미안함이 방송에서 갑자기 터져버린 것이다. 우느라 방송이 잠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녹화에 들어가야 했다. 나중에 작가님께 우는 장면은 편집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부끄럽게도 방송에 전부 나갔다.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절약하고 돈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소중한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조금만 참으면,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반드시 그렇게 해주겠다는 굳은 다짐과 구체적인 계획이 있긴 했지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무조건 절약’을 강요하고 싶진 않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새 책을 사 읽히고, 새 옷을 사 입히지는 못했지만, 대신 더 값지고 소중한 지식과 지혜를 심어주고자 애썼다. 내가 달라지기 위해, 내 삶을 바꾸기 위해 시작한 북테크였지만 그렇다고 ‘나만’, ‘내 삶만’ 변화시키고자 애썼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의 삶에서 아이는 가장 중요한 일부, 아니 전부가 된다. 돈을 버는 법이나 나를 변화시키는 법뿐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우는 법, 아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한 책도 당연히 많이 읽었다. 

또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독서 육아와 관련된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하겠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래서 아끼고 모으는 와중에도 아이들 책을 사주는 데는 늘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비록 중고 서적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책이 헐었다고 그 안에 담긴 지식이나 지혜도 낡은 것은 아니다.)

※ 참고자료 : 김유라의 『아들 셋 엄마의 돈 되는 독서 : 돈도, 시간도 없지만 궁색하게 살긴 싫었다(차이정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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