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장욱 기자] “환상적인 모험에 숨겨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

풍자문학의 대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걸리버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통해 당대의 정치사회와 인간 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스위프트는 “이 작품의 의도는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걸리버 여행기』는 1726년 출판되었을 때부터 엄청난 인기와 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으며, 신랄한 묘사로 인해 내용이 삭제되거나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19세기 초 『걸리버 여행기』는 원작의 거친 표현과 풍자 등을 삭제하고 아동문학으로 발행되었는데, 이런 판본들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그러나 아동용 『걸리버 여행기』를 접한 사람은 원전의 풍자를 이해할 수 없다. 현대지성 클래식의 『걸리버 여행기』는 완역본으로 풍자문학의 진수를 느낄 수 있으며, 일러스트의 대가 아서 래컴의 삽화로 재미를 더했다. 또 꼼꼼한 해제를 수록해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했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은 『걸리버 여행기』를 두고 “이 책은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으며, 다른 모든 책들을 파괴하고 오로지 여섯 권만 골라야 한다면 그 중의 하나로 이 책을 고를 것이다.”라고 했으며, 영국 문학사가 조지 세인츠베리는 “스위프트는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완전한 재미의 원천이다.”라고 평했다. 당대의 부패한 사회와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행태에 날리는 스위프트의 독설은 몇백 년의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다. 그의 날카로운 풍자는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즐거움과 깨달음을 줄 것이다.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는 1667년 11월 3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는 잉글랜드인 부모를 둔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이었다. 스위프트는 삼촌들의 보호 아래 성장해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를 졸업했다. 1688년 명예혁명 후 퇴위당한 제임스 2세가 아일랜드를 거점으로 왕국을 되찾으려는 내전을 벌이자, 스위프트는 잉글랜드로 피신한 뒤 은퇴한 유명 정치가 윌리엄 템플 경의 비서로 취직했다. 그동안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영국 국교회의 사제 서품도 받았다.

스위프트는 산문, 특히 풍자적인 내용의 산문을 발표하면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1690년대 후반에 집필한 『통 이야기』는 스위프트의 대표적 논문으로 종교와 학문의 부정부패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풍자했다. 1699년 템플 경이 세상을 떠나자 스위프트는 더블린으로 돌아갔다. 당시 영국은 휘그당과 토리당이 당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원래 휘그당이었다가 나중에는 토리당의 편에 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714년 앤 여왕이 사망하고 조지 1세가 등극하면서 토리당 내각이 붕괴하였다. 스위프트는 아일랜드로 돌아갔고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이 시기에 스위프트는 영국의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대작 『걸리버 여행기』(1726)를 집필했다. 그는 『드레피어의 편지』(1724)와 『겸손한 제안』(1729) 두 논문에서 아일랜드 문제를 거론했으며, 특히 가명으로 발표한 『드레피어의 편지』로 아일랜드의 영웅이 되었다. 1730년대 그는 더블린의 성 패트릭 대성당의 주임사제이자 아일랜드의 애국자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하지만 스위프트는 평생 질병으로 고통받았으며 말년에는 친지들로부터 “마음과 기억이 건전하지 못하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스위프트는 1745년 10월 19일에 사망했고 시신은 성 패트릭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그의 유산은 아일랜드 최초의 정신병원을 건립하는 데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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