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수인 기자] 피시방, 패스트푸드점, 현금 지급기 같은 공간이 일상 곳곳에 자리하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동수단인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예전에는 사람들이 단순히 책이나 신문을 읽었지만, 이제 휴대전화나 DMB 같은 각종 기기들을 사용해 다른 공간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거나 실시간으로 영상물을 감상한다.

또 오랜 세월 고단한 서민의 삶을 위로해온 종로 피맛골이 첨단 상가로 탈바꿈하기 위해 철거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친숙한 공간이 어느 날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같이 경험하는 일상 공간의 풍경에는 이처럼 공간의 변화와 더불어 삶의 변화가 스며 있고, 보통 사람의 일상과 시대의 공기가 반영되어 있다. 일상 공간은 인간과 함께 계속 변화하며 새로운 경관을 생산하고 있고, 지금 이곳의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뿐 아니라 사회 변화, 역사의 맥락까지 두루 투영하는 총체적인 세계이다.

저서 <지리학, 인간과 공간을 말하다(책세상, 2020)>는 ‘인간학’으로서의 ‘지리학’을 설명한다.그럼에도 우리는 일상 공간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그 안에 퇴적된 의미의 지층을 발견하지 못한다. 공간과 위치에 관한 학문인 지리학조차도 공간이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인간과 공간 속에서 기능적이고 과학적인 시선으로 법칙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데에만 천착해왔다.

 

책 속에는 “지리학은 ‘위치location’에 관한 학문이다. 인간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묻는 학문이며, 지리적 현상이 ‘어디에’ 위치하고 분포하는지를 탐색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지리학은 위치나 분포만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위치나 분포에서 시작할 뿐이다. 지리학에서 위치나 분포가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학은 위치와 분포에 대한 탐색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넘어 삶의 문제와 인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려는 학문이다.”라고 한다.

지리학의 영역을 확장시켜 연구해온 저자의 책은 이런 기존의 지리학을 해체하고 일상 공간을 통해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탐색함으로써 삶과 교감하는 일상의 지리학을 제안한다. 낯익은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는 데서 출발하는 일상의 지리학은 단순한 지역 간 차이의 구분에서 벗어나 시선의 차이에 주목하고(다름의 지리학), 획일적인 경관에서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며(같음의 지리학), 공간 배치의 미세한 의미 체계를 해석하고(배치의 지리학), 공간을 매개로 사회 현상을 설명함(리좀의 지리학)으로써 지리학을 재영토화하려 한다.

저자 박승규는 1966년 강원도 원통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교사의 길을 꿈꾸며 한국교원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지리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지리학을 잘하기 위해서는 지리학에서 한 발 물러나 지리학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당시 유행하던 포스트모더니즘과 지리 교육을 연결하려는 포부를 품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꿈은 조금 더 재미있게 지리를 가르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그 결과물이 일상생활과 지리 교육을 연결한 박사 논문이다. 지금은 춘천교육대학교에서 교양 과목과 지리학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며, 문·사·철과 예술이 어우러져 읽어내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구와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