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버터플라이의 심리칼럼

[한국강사신문 안유선 칼럼니스트] 성범죄 사건이 늘어나고 있다. 대검찰청에서 집계한 범죄통계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지난 10년 동안 성범죄는 95.1% 증가했다. 범죄율 증가는 전자기기를 이용한 디지털 범죄가 늘어난 것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범죄 신고율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를 보고도 신고를 꺼려왔다. 조사와 소송 중에서 겪는 2차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최근 ‘Me too 운동’은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운동으로 피해자들은 ‘나도 역시 피해자’임을 드러낼 수 있었다. 덕분에 만연하면서 은폐되었던 범죄가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피해가 드러났을 때 가해자나 사건을 지켜보는 군중 속에는, ‘뭐 이만한 일을 문제 삼는가?’라는 시선이 있다. “참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은가?”, “다 지난 일을 굳이 들추는 이유가 무엇일까?”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성범죄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범죄에 노출된 모든 사람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범죄는 심각한 심리적 또는 신체적 손상을 남기기도 한다.

한국트라우마 연구교육원 주혜선 원장에 따르면, 성범죄에 노출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가진 신념체계로는 그 날의 사건을 설명할 수 없으니 사건에 맞춰 자신의 신념체계를 바꾸기에 이른다. 바뀐 신념체계는 트라우마 사건에만 적용되지 않고 이후 삶 전체에 영향을 준다. (출처: 한국 트라우마 연구교육원 주혜선 원장, (사)한국상담심리학회 학술 및 사례 심포지엄, 2018. 5. 19.)

“영혼이 부서졌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와 같은 피해자의 표현은 성범죄 사건 이후 신념체계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안전하고 살만하다.”가 “세상은 위험한 곳이다.”로, “남자는 여자를 보호한다.”가 “남자는 여자를 공격한다.”로,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다.”가 “나는 나를 지키지 못한다.”로 변하기도 한다. 자기와 타인, 세상에 대한 믿음이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변한다. 세상은 예전처럼 돌아가는데, 더는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된다.

성범죄가 일으킬 수 있는 정신건강 문제는 우울과 불안 등 정서장애 뿐 아니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성격장애, 중독에까지 이른다. 성범죄와 함께 상해를 입은 경우, 신체적으로 회복이 된 후에도 만성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지난 5월 19일, 사단법인 한국상담심리학회 정기 심포지엄이 있었다. “#Me too 운동, 회복을 위한 상담자와 사회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성범죄 생존자의 인권보호와 치료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법률가 입장에서 바라본 성희롱>, <성범죄 피해자 심리지원방법>, <복합외상 상담사례>, <상담자가 겪는 좌절경험>에 대한 발제들은 상담사들이 현장에서 갖는 질문에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성범죄 사건이 정신건강에 얼마나 유해한지를 이해하는 것은 정신건강 전문가들만의 몫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효과적 치료를 위한 노력을 해도 사후적 대처에 지나지 않는다. ‘뭐 이만한 일을 문제 삼는가?’라는 시선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면 범죄는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성범죄가 정신건강에 치명적 트라우마 사건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기. 성범죄에 대해 관대했던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시작이다. 또한, 진정한 회복을 위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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