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수인 기자] 얼마 전 우리말로 번역된 <어셈블리―새로운 민주주의 질서>의 저자 네그리와 하트는 2010년대에 들어 전 지구적으로 이어진 민주주의 투쟁의 중요한 고리로 촛불항쟁을 꼽고는 “한국의 사회투쟁들이 보인 끈기와 독창성에 오랫동안 감탄하며 바라봤다”면서 “이 투쟁들이 우리가 공유하는 미래를 위해 어떤 새로운 교훈을 가르쳐줄지 배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실로 ‘촛불’은 오늘날 한국(‘K’) 민주주의의 요체가 담긴 대상이며 세계적인 주목 대상임은 분명하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K방역’의 성공과 ‘촛불’에 공통된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은 의료계를 위시한 몇몇 분야의 세계 최고의 실력과 공동체를 위한 헌신적 노력,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희생, IT 하이테크에 기반한 속도와 접속의 밀도, 자유주의적인 정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 등이다. 저서 <촛불 이후, K-민주주의와 문화정치(역사비평사, 2020)>는 바로 그 요소들과 맥락이 함께 구성하고 있는 한국 문화정치를 ‘K-민주주의’라 부르고, 그 속내를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17년 3월 11일까지 스무 차례 집회·시위의 장소와 형태는 조금씩 변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슷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네트워크’나 ‘유연자발집단’은 소규모 조직화나 풍자에는 유능했을지 모르지만, 지배체제를 해체·대체하는 실천에서는 그리 창발적이거나 유능하지 못했다. 연인원 1,600만 명을 돌파한 촛불은 계급·세대·젠더를 초월하여 박근혜 정권의 종식뿐 아니라 근본적 사회개혁이라는 대의에 대동단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한 실제적 합의는 없거나 추상적이었다. ‘촛불혁명’이 많이 운위되었지만 시민은 진정한 본격적인 개혁 앞으로는 가지 못했다. 촛불항쟁은 교착 국면에 있다가 박근혜 탄핵을 성취한 후 급격히 선거 국면으로 빨려들어가며 일단 중지되었다. 분명 촛불의 경이로운 규모와 확산 자체는 ‘혁명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몇 가지 실제적 성과도 끌어냈다. 그러나 무려 1,600만이 훨씬 넘는 시민을 거리로 나오게 한 촛불항쟁은 장점과 단점을 다 가지고 있었으며, ‘비폭력 평화’와 다양성과 같은 촛불의 장점은 그 한계와 맞닿은 것이기도 했다. 촛불 속에 내장된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의 실현은 뒤틀리고 연기되었다.

“우리는 한편 ‘촛불’을 살고, 한편 ‘촛불’의 잔해 위에서 여전히 애쓰며 조금씩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 ‘잔해’의 형상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촛불’을 살아내는 방법일 것이다.

저자 천정환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부산 출생이며, 한국 현대 문화사와 문학사 연구자이다. <문화론적 연구’의 현실 인식과 전망(2007)>, <학사 이후의 문학사(2013)> <근대의 책 읽기(2003)> 등을 발표하여 한국 현대문학사 연구의 폭을 넓히고, <대중지성의 시대(2008)>,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스포츠민족주의와 식민지 근대(2010)>, <자살론-고통과 해석 사이에서(2013)>,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123편 잡지 창간사로 읽는 한국 현대 문화사(2014)> 등을 썼다.

<혁명과 웃음-김승옥의 시사만화 〈파고다영감〉을 통해 본 4·19 혁명의 가을(공저, 2005)>, <1960년을 묻다-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공저, 2012)> 등을 통해서도 역사적 문화연구, 또는 문화정치사 연구의 지평을 개척해왔다.<역사비평>, <문화/과학> 편집위원. <경향신문>, <한겨레> 등에 칼럼이나 기획 연재물을 실어왔고, 인문학협동조합, 민교협, 지식공유연대 등을 통해 학술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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