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김수인 기자] 새로운 인문학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늘 익숙한 동시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격랑을 겪어온 한국사회의 지난 10여 년간의 모습들, 예컨대 ‘18대 대선’과 ‘세월호 참사’, 그리고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의 인권에 관한 문제 등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을 무수한 패배와 성취로서 모두 겪어낸 지금-여기의 우리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진석은 각기 다른 주제와 상황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탐구하기보다는 ‘비인간’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젝과 벤야민, 데리다와 들뢰즈 등을 경유해 다채로운 사유를 펼쳐낸다.

그에 의하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은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며 ‘창안된’ 개념이다. 문학과 역사, 철학을 기반으로 삼는 학문적 전통으로서의 인문학은 분명 그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문학과 예술, 과학기술과 인공지능, 페미니즘까지 아우르는 인식과 성찰의 전 영역을 인문학이라 부르는 풍조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이다. 이른바 ‘문·사·철’로 한정되어 있던 근대적 유산은 1990년대 중반 ‘인문학의 위기’와 더불어 끝나고 말았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은 냉전의 종말과 근대문학의 종언,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바람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신생’ 학문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간, 문화, 학문의 세 가지가 인문학이 끝까지 움켜쥐고 있던 본질적인 가치들이었다. 지구상의 어떤 존재보다 인간을 우선시하는 지혜, 삶을 풍요롭게 증진시키는 예술적 환경, 즉물적 인식을 넘어서 삶의 근저를 관통하는 앎으로서 인문학은 스스로를 정체화해왔다. 그러나 비대해진 인간의 자아 속에 소외되어버린 감각 및 신체적 실존 문제나 휴머니즘을 명분으로 인간 아닌 것 일반에 자행되었던 공격성, 다수자와 소수자를 가르고 차별하며 배제함으로써 성립한 폭력적 구조 등은 인문학의 가치나 소용이 진정 추구할 만한 것인지 의문스럽게 만든다. “세계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변화가 중요하다”는 마르크스의 언명조차 소비자를 유인하는 광고문구가 되는 상황에서, 인문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금-여기, 우리에게 가장 간절한 질문이다.

결국 이 모든 글들을 아우르는 것은 지금까지의 인문학은 시간이 지나며 낡은 틀이 되었으며, 이제는 이를 벗어나야 한다는 대주제다. 근대의 인문학은 모두 ‘인간을 위한 학문’, 즉 ‘휴머니즘’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인류세란 말이 낡은 것처럼 느껴지는 요즈음, 신이 죽은 이후 인간도 죽었다는 말이 어쩌면 이제는 사실처럼 들린다. ‘인간’이라는 개념은 유사 이래 늘 확장되어왔지만 그럼에도 비좁은 개념이었고, 이를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사유의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지금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와 부흥이 동시에 운위되는 이상스런 역설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한편으로 인문학은 실제적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무용한 학문으로 치부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파에 지친 대중에게 달콤한 유혹과 환상, 위로를 줄 것으로 기대되는 형편이다. 이 이중의 역설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가 창궐한 시대 상황과 합류하면서 인문학의 존재 가치와 방향 설정에 더 큰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인문학이란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의 역사와 사유, 방법과 전망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의식은 인문학의 발판 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학문의 성채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인식과 통찰에 충실하고, 외적인 유행을 추종하지 않으면서도 부단히 외부와의 교섭력을 잃지 않아야 하는 불가능성의 인문학. 지금 우리는 이를 직시하고 성찰해야 할 시간에 놓여 있다.

저자는 저서 <불가능성의 인문학 (문학동네, 2020)>을 통해 비인간, 그로테스크, 감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며 인간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이상 인간 자신만이 인간의 주요한 관심사로 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인문학의 불가능성과 가능성의 조건을 동시에 사유함으로써 유일한 현재의 굴레에 결박되지 않는 것, 여기에 인문학의 잠재성이 놓여 있진 않을까. 그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세계에 대한 더 내밀한 이해에 도달하며, 마침내 근대 인문학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최진석은 문학평론가이며, 수유너머104 연구원이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근대비평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러시아인문학대학교에서 문화와 반문화의 역동성을 주제로 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사회, 문화와 정치의 역설적 이면에 관심을 두면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감응의 정치학: 코뮨주의와 혁명>,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미하일 바흐친과 생성의 사유>, <불온한 인문학 (공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공저)> 등을 썼고, <다시, 마르크스를 읽는다>,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해체와 파괴>, <러시아 문화사 강의 (공역)>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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