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노버, 유럽 자유여행에서 걷기 좋은 길 따라 걷기

[한국강사신문 유재천 칼럼니스트] 독일 하노버의 첫 느낌이 눈부시게 좋아서 그런지 괜히 벌써부터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하노버는 니더작센주에 있으며 약 5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다. 사실 50만 인구면 큰 도시인데 큰 도시 느낌이 나진 않는다.

처음 도착한 역 앞이 아주 시끌벅적했고 숙소 쪽으로 조금만 걸어오니 아주 조용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온 것 같다. 우선 호스텔에서 이틀 숙박 요금을 결제했다. 그리고 6인실인 방으로 향했다. 조금은 오래된 호스텔이었지만 깔끔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덕분에 5층까지 헉헉거리며 힘겹게 걸어 올라갔다. 방에는 아무도 없다. 시간이 오후 9시가 다 되었는데도 아무도 없는 걸 보니 오늘은 이 넓은 6인실에서 나 혼자 자겠다고 혼잣말을 해본다. 방에서 바라본 건물 밖 풍경이 고요하니 좋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천천히 여유롭게 이 시간을 느끼다 가야겠다.’ 나는 천천히 오랫동안 창 밖 풍경을 감상했다.

다음 날 아침,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진 않았다. 나는 최대한 늑장을 부리며 이제 겨우 유럽 자유여행 시차에 적응한 나의 몸에 여유를 선물했다. 마침 방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편안했다. 한참 게으름을 피우다가 나갈 준비를 했다. 여행 책을 펼쳐서 여행지도를 보며 어딜 갈지 잠시 보았으나 곧장 책을 덮고 나는 그냥 숙소를 나섰다. 그리고 그냥 걸었다. 아, 목적지는 한 군데 있었다. 어제부터 탄수화물을 하나도 못 먹은 탓에 나의 몸은 밥알을 찾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은 밥알로 가득 찼다. 나는 책에서 본 독일 하노버 유일의 한인식당을 머릿속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설정했다. 그리고 걷기 좋은 길을 따라 그냥 걷기를 즐기며 그곳을 찾아갔다.

가는 길이 시원했다. 적당히 부는 바람과 함께 햇살도 좋았다. 걷기 좋은 길을 걷다가 나오는 멋진 거리, 예쁜 색으로 칠해진 건물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 어렵지 않게 목적지를 찾았다. 사실 ‘벌써부터 현지식이 아닌 한인식당을 찾다니’라며 한편의 나는 나를 꾸짖고 있었지만 나는 합리화했다. 생각해보니 유럽 자유여행을 시작하고 독일에 도착해서 탄수화물을 한 번도 섭취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자기합리화를 끝낸 나는 이미 한인식당 ‘Choi’ 앞에 서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문이 닫혀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내부 공사 중이란다. 그렇게 독일에서의 첫 한인식당 방문은 좌절됐다.

다행히 근처의 거리에는 레스토랑이 많았다. 아직 밥알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한 나는 그새 옆에 있는 중식당에 앉게 되었다. 익숙한 요리인 치킨 ‘Chop Suey’를 주문한다. 하얀 롱 라이스를 마주하고 갓 볶아진 신선한 야채와 함께 나온 ‘Chop Suey’에 머리를 박았다. 허겁지겁 먹다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천천히 먹으라고 말이다. 나는 다시 천천히 맥주를 들이켜며 이 시간을 즐긴다. 좋다.

식당 근처에 있는 과일 상점에 진열된 과일들이 탐스럽다. 이미 배를 채우는 데 돈을 썼으니 감상만으로 나를 만족시킨다. 이제 원했던 탄수화물을 기분 좋게 충전했으니 어딜 가고 싶어진다. 지도를 보지 않고 그냥 걷기 좋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바람 부는 대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공원 같은 곳이 보였다. 들어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계속 그쪽을 향했다.

가는 길에 어린아이들이 노는 풍경이 정겹다. 주택가에 놀이터였는데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서로 장난치며 노는 모습이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계속 길을 걸으니 공원 비슷한 장소가 이어졌다. 숲이다. 벌써부터 청량한 공기가 나의 폐로 스며든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으며 숲을 따라 걸었다. 그냥 걷기가 이렇게 시원하고 좋을 수가 없다. 조금 가다 보니 안내 화살표에 ‘ZOO’라고 적혀있다. ‘숲 속에 동물원이?’라는 호기심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나는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중간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어디로 갈까? 오른쪽을 택한다. 두 개의 길은 다시 합쳐졌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처럼 크게 생각하지 않아도 결국 긍정적으로 귀결되는 것과 같았다. 드디어 동물원이 나왔다. 하노버 동물원이다. 내가 가진 안내 책자에 나와 있지 않은, 그냥 걷기 좋은 길을 따라 걷다가 도착한 동물원이었다. 동물원 입구에는 유치원에서 단체로 온 귀여운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정말 귀여운 친구들과 함께 나도 표를 끊었다. 1시간 정도 관람했는데 숲 속에 꾸며 놓은 동물원을 체험하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동물원 투어를 마치고 다시 왔던 숲길을 걸었다. 많이 걸어서 다리에 피로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기에 나는 숙소에서 좀 쉬기로 했다. 숙소에 가니 방에 두 명의 여자가 있다. 여자? 내가 묵은 6인실의 도미토리는 남녀 혼방이었다. 물론 가운데 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 독일인 여성 두 명에게 인사를 건넸다.

“할로~”

갑작스럽게 방에서 만난 여성을 보자 나는 쑥스러웠다. 나는 내 침대로 쏙 들어가서 누웠다. 잠시 후 들려오는 기타 연주와 허밍 소리에 씨익 미소가 번진다. 독일인 친구 두 명은 음악을 하는 친구들인가 보다.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허밍과 함께 연주하는 소리가 정겹다. 창밖은 여전히 여유롭게 아름답고 지금 이 분위기는 평온하다.

방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시 숙소를 나섰다. 그냥 숙소 앞을 걷고 싶었다. 이번에도 그냥 걷기 시작했다. 따뜻한 햇살과 함께 펼쳐지는 하노버의 거리는 여전히 걷기 좋았다. 호숫가 걷기 좋은 길을 따라 걷다가 벤치에 앉기를 반복했다. 천천히 여유로움을 선물해주는 하노버에게 고맙다. 하노버는 걷기 좋은 길이 많은 그냥 걷기에 아주 좋은 도시다.

※ 참고자료 : 의미공학자 유재천 코치[前 포스코(POSCO) 엔지니어]의 『여행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도서출판 행복에너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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