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권순섭 기자] 성균관 대성전은 서울문묘를 비롯해 전국 231개 향교마다 건치(建置)되어 있다.  성균관 대성전은 남북으로 4영(楹), 동서로 5영의 20칸 규모에 전당후실(前堂後室) 양식이다. 남향으로 직통한 신로(神路) 옆에 어로(御路)가 어삼문(御三門)으로 통했으며, 동계(東階)·서계(西階)가 축조되었다.

동문과 서문이 설치된 대전(大殿) 안에는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인 공자를 정위(正位)로 하여 안자(顔子)·자사(子思)는 동쪽에, 증자(曾子)·맹자(孟子)는 서쪽에 배치하였다.

4성(四聖) 뒷줄로 동쪽에는 민손(閔損)·염옹(冉雍)·단목사(端木賜)·중유(仲由)·복상(卜商)·주돈이(周敦頤)·정이(程頤)·장재(張載)를 앞줄에, 설총(薛聰)·안유(安裕)·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송준길(宋浚吉)은 뒷줄에 종향(從享)하였다.

서쪽으로는 염경(冉耕)·재여(宰予)·염구(冉求)·언언(言偃)·전손사(顓孫師)·정호(程顥)·소옹(邵雍)·주희(朱熹)는 앞줄에, 최치원(崔致遠)·정몽주(鄭夢周)·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迪)·김인후(金麟厚)·성혼(成渾)·조헌(趙憲)·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는 뒷줄에 종향해, 공자를 비롯한 이른바 5성(五聖)·10철(十哲)·송조6현(宋朝六賢)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판을 봉안하고 봄·가을로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1530년(중종 25) 소상(塑像)을 철거하고 목주(木主)로 대용하였다. 현존하는 공자의 위판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가 환안(還安)한 역사가 있다. 원나라의 무종(武宗)이 대성(大成)이라 추시(追諡)하고, 1104년인 송나라 휘종(徽宗) 숭녕(崇寧) 3년에 벽옹문선왕전(辟雍文宣王殿)을 대성전이라 한 뒤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특히 성균관대학교 내에 위치한 대성전은 오래된 고목들과 함께 하고 있어 대학생들과 인근 주민들의 산책하는 코스로도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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