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권순섭 기자] 양동마을은 경주 손씨(慶州 孫氏)와 여주 이씨(驪州 李氏)의 두 가문에 의해 형성된 유서 깊은 양반마을이다. 15세기 중반 조선시대 문신 손소(孫昭)가 양동으로 이주하고, 이번(李蕃)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들어 이곳에 정착하면서 오늘과 같은 양성 씨족마을의 틀이 갖추어졌다. 이러한 배경으로 '외손마을'이라는 별칭이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조선중기 중앙의 관직을 두루 역임한 손중돈(孫仲暾)과 사후 동방5현의 한 분으로 종묘와 문묘에 동시에 배향된 재상이자 성리학자 이언적(李彦迪)이 있다.

마을 북쪽으로는 설창산이, 남쪽에는 약 100m 높이의 성주봉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양동천이 흐른다. 서쪽 산 너머에는 양동마을의 경제적 토대였던 안강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은 안계(安溪)라는 시내를 경계로 동서로는 하촌(下村)과 상촌(上村), 남북으로는 남촌과 북촌의 4개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마을 바깥에서는 마을의 전체적인 규모나 가옥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우나, 한자로 ‘말 물(勿)’자를 거꾸로 놓은 형상이라고 전해진다. 즉, 마을 북쪽에 위치한 설창산의 산줄기가 물(勿)자 모양으로 내려와 능선을 이루고, 능선이 이루는 세 골짜기에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손씨와 이씨의 양 가문은 각각 서로 다른 골짜기에 자신들의 종가와 서당, 정자 건물을 두고 있다. 신분의 차이에 따라 지형이 높은 곳에 양반가옥이 위치하고 낮은 곳에 외거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듯 형성되어 있다.마을 가옥의 대부분은 ㅁ자형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은 ㄱ자형, 서당은 ㅡ자형이 많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돌담길이 이어지며, 전통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되었다. 중요 문화재로는 통감속편(국보 283), 무첨당(보물 411), 향단(보물, 412), 관가정(보물 442), 손소영정(보물 1216)을 비롯하여 서백당(국가민속문화재 23) 등 국가민속문화재 12점과, 도지정문화재 8점이 있다. 원나라 말기 법전인 지정조격의 세계 유일본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과거 노비들이 살았던 초가집도 보존되어 있다.

2010년에는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매년 정월대보름에는 줄다리기와 연날리기 등 다양한 전통놀이가 마련되어 있다. 주변 명소로 이언적이 거주하였던 독락당(獨樂堂)과 사후에 그를 배향한 옥산서원(玉山書院), 손중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동강서원(東江書院)이 있다.  

※ 참고문헌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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