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최종엽 칼럼니스트] 몇 해 전 〈전우치전〉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전우치역을 맡았던 배우 차태현이 변신을 할 때마다 무엇인가 주문을 외웠다. 처음에는 그 대사가 빨라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몰랐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그것은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라는 말이었다. “오도일이관지, 나의 도는 하나로 꿰어져 있다.” 그 주문이면 만사형통, 마법이 걸리고 변신이 가능했다. 이 절묘한 주문 ‘오도일이관지’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날 공자가 증삼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이렇게 말했다. 증삼(曾參)은 증자(曾子)의 이름이다. 공자 나이 70일 때 27살의 청년 제자였던 증자였지만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저자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훌륭한 제자였다. 공자 이후 유교는 증자를 거쳐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맹자(孟子)로 이어지게 된다.

오도일이관지. 공자의 도를 가장 가까이서 찾아낸 제자가 바로 증자였던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충(忠)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음(心)의 중심(中)을 의미한다. 진심, 충성, 정성을 말한다. 충은 마음의 가장 가운데를 말한다. 온갖 정성을 다하는 심중의 심중을 의미한다. 그게 충이다.

국가에 대한, 부모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신의 업에 대한 충을 말함이라. 일에 대한 충의 마음이 삶을 만들고, 인생을 만들고, 희망을 만들고, 행복을 만든다. 매일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그 일에 대한 충심이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마음이 가운데 있지 않고, 가장자리로 빙빙 도는 이유로 일이 멀어지고, 희망이 멀어지고, 행복이 멀어지고, 인생이 멀어진다. 반복되는 그 일상의 일에 대한 충심이 인생을 세운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어렵다.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일을 선택하기도 어렵고, 일을 구하기도 어렵고, 잡은 일을 지키기도 어렵고, 일을 성취하기도 사실은 어렵다. 마음이 갈려서 그렇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가 아닌 둘로 갈려서 그런 것이다. 춘추시대도 그랬고 조선 시대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 어느 때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시대는 없었다.

마음의 중심을 잡아 일에 몰두를 하는 것,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서(恕, 용서할 서)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서는 같은 마음을 말한다.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아지는 것을 말한다. 그게 바로 용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용서가 어려운 시대다. 그것은 춘추시대도 그랬고 조선 시대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사람 사는 세상에 용서가 쉬운 시대는 없었다.

사랑하면 같아질까, 좋아하면 같아질까, 이해하면 같아질까, 얼마를 주면 같아질까. 어쩌면 용서의 서(恕)는 사랑보다도, 좋아함보다도, 이해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같은 마음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사랑이 식으면 마음도 따라 식고, 좋아함이 옅어지면 마음도 따라 옅어진다. 그래서 공자께서 말을 했는지 모른다. 어려운일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충(忠)과 서(恕) 모두 마음에 관한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고 몰입하여 정성을 다하는 것도 마음의 문제, 용서하고 마음이 서로 하나처럼 되는 것도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는 충(忠)을, 타인에게는 서(恕)를, 일이나 업무에는 충(忠)을, 사람에게는 용서(恕)를, 오늘의 일이나 사람에게는 충(忠)을, 어제의 일이나 사람에게는 용서(恕)의 마음을 갖는 것이 하나로 꿰어져, 스승인 공자가 가지고 있는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라고 증자는 눈치를 챘던 것이다.

삐뚤어진 마음이 아닌 바른 마음으로, 어두운 마음이 아닌 밝은 마음으로, 부정적인 마음이 아닌 긍정적인 마음으로, 소극적인 마음이 아닌 적극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오늘의 업무에 정성으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바로 충(忠)이다. 삐뚤어진 마음이 아닌 바른 마음으로, 어두운 마음이 아닌 밝은 마음으로, 부정적인 마음이 아닌 긍정적인 마음으로, 소극적인 마음이 아닌 적극적인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여 다시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매직을 만드는 것이 바로 서(恕)다.

다른 의미로 본다면 인생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충과 서다. 세상 사람들이 평생을 두고 풀어야 할 장벽과도 같은 숙제를 공자가 먼저 시도했고 증자를 비롯한 뛰어난 열 제자가 그 뒤를 따랐다. 예수가 먼저 시작했고 열두 제자가 그 뒤를 따랐다. 그로부터 2,000년 이상이 지났다. 2,000년이 지났지만 그 숙제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마다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풀어야 할 숙제와도 같기 때문이다. 어렵기 때문에 더 깊은 의미가 있다. 풀기 어렵기 때문에 그 문제 곁은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숙제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모여든 사람들은 이 과제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노력하게 되고 더 사랑하게 된다.

공자가 평생 기준으로 삼았다고 스스로 고백한 충(忠)과 서(恕)는 어두운 밤 세찬 태풍에 흔들리는 뱃머리에서도 희망의 불빛을 비추는 등대 빛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갈 방향을 알려주고 그를 따라가면 안전한 항구에 안착할 수 있는 희망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최종엽 칼럼리스트는 한양대학교 인재개발교육 석사, 평생학습 박사를 수료했다. 삼성전자㈜ 인사과장, 경영혁신차장, PA부장으로 일한 후 현재 잡솔루션코리아와 카이로스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겸임교수, 인문학 강사, 공공기관 전문면접관으로도 활동하며 연간 100회 이상의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특히 인문학<논어> 특강은 다양한 조직의 리더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강사경연대회 금상수상, 대한민국명강사(209호)로 위촉되었고, MBC ‘TV특강’, KBC ‘화통’등 여러 방송매체에서 강연 한 바 있다.

저서로는 『강사트렌드 코리아2020』(공저), 『원려, 멀리 내다보는 삶』 , 『논어 직장인의 미래를 논하다』, 『블루타임』, 『사람예찬』(공저), 『서른살 진짜 내인생에 미쳐라』, 『나이아가라에 맞서라』, 『미국특보 105』 등이 있다.

※ 참고자료 : 『일하는 나에게 논어가 답하다(한스미디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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