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이기양 칼럼니스트]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줄임말이다. 추운 날씨에도 차가운 음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뜻이다.

때로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정작 나만 모를 때가 있다. 어느 겨울 학부모 모임이 있었다. 따뜻한 커피 10잔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 언니들은 “이렇게 추운 날 얼음이라니 가슴에 화가 많니?”라고 물었다. 농담이었을 텐데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고 보니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나질 않았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답답했던 걸까? 내 안에 너무 뜨거운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나라에만 통용되는 병이 있다. 바로 ‘화병(火病)’이다. ‘울화병’이라고도 불린다. ‘화병’은 억울한 감정이 쌓인 후에 ‘불’과 같은 형태로 폭발하는 질병을 말한다. ‘화(火)’란 불 자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분노’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분노도 기쁨, 슬픔처럼 인간의 감정 중의 하나다. 이 ‘화병’은 화가 쌓여 분노로 표출되는 병이다. 나도 답답한 가슴에 감정이 쌓여 마치 ‘화병’이 난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내 심장이 ‘얼죽아’를 원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냉정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따뜻한 표현에 인색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럴만한 작은 여유조차도 내겐 없었던 것 같다. 마음을 돌보는 일은 일상의 일들을 해나가는 것만큼 중요하다. 공감 받지 못하고 상처 받은 마음을 제때 치유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이 없는 좀비인간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을 일컫는 신조어 ‘워킹맘(working mom)’. 워킹맘들은 육아와 경력 두 가지 선택을 양손에 쥐고 하루하루를 갈등 속에서 보낸다. ‘양날의 검’처럼 두 개를 동시에 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에 집중하면 아이들이 잘 못 자라는 것 같다.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내려면 일이 소홀해지는 것 같다. 이 둘은 양립하기 어렵다.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 생활을 갖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이 이어진다. 현재 가장 중요한 두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때로는 퇴근길에 찔끔찔끔 눈물도 나온다. 어떤 날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다. 다른 어떤 날은 나에게 미안해서였던 것 같다.

첫 직업이자 꽤 오랫동안 해왔던 학원 강사라는 일은 퇴근시간이 늦다는 단점이 있다. 퇴근해서 아이들과 잠시 시간을 보낸 후 재우고 나면 어느새 12시를 훌쩍 넘긴다. 밀린 일들을 시작하기 전 커피 한 잔을 들고 소파에 앉는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그 5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처음엔 믹스커피 한잔에도 뛰던 심장이 하루 다섯 잔의 커피에도 끄떡없다. 잠을 쫓으려고 한 잔. 심심할 때 한 잔. 그리고 지치고 답답할 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힘이 되었다. 얼음 가득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드는 순간부터 이미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상담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풀리지 않는 답답한 마음이 궁금해서였다. 무엇이 나를 ‘얼죽아’로 만들었을까. 나는 정말 차가운 사람일까? 예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을 만나지 않은지 10년이 지나있었다. 친구를 만나야겠다고 무작정 기차표를 예매했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제 만났던 것처럼 편안했다. ‘일하는 나’과 ‘엄마인 나’ 그리고 ‘그냥 나’ 이렇게 삼각형이 그려졌다.

메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아동극 <파랑새>는 행복을 위해 파랑새를 찾는 남매의 이야기 다. 틸틸과 미틸은 파랑새를 찾지 헤매지만, 결국 집안의 새장에서 발견하게 된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일과 육아에 균형을 찾으려 애쓰던 나는 가장 중요한 ‘나’를 보려 하지 않았다. 파랑새는 내 안에 있었다.

이제는 일과 육아에서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의 상황과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 중이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불교용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찾으니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계속 다가온다. 내 아이들과 허심탄회하게 지내려 하다 보니, 아이들도 마음을 열고 내게 달려온다. 어느덧 끓어오르는 뜨거움이 사라지고, 내 안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내 안의 뜨거운 것은 이제 안녕. 나는 더 이상 ‘얼죽아’가 아니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이기양 칼럼니스트는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울산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상담교육 석사 과정 중이다. 현재는 취업 진로 교육, 고교 학점제 및 학점전략 등의 강의를 하고 있다. 울산노동인권센터, 울산청소년성문화센터, 울산청소년노동인권에서도 소속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취업진로 강의를 통해 만나는 교육생들의 꿈멘토가 되어 그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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