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사진출처=Pixabay]

[한국강사신문 유영만 칼럼니스트]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탄자니아에 있는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 정상을 등정한 적이 있습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킬리만자로에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왔지요.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공항에 내리는 순간 아프리카의 작렬하는 폭염의 열기가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공항에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가 준비한 차량에 탑승해서 호텔로 가는 길에서 펼쳐지는 탄자니아의 풍경은 마치 야생의 단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해발 3,000미터를 넘어서면서 서서히 고산 증세가 시작됐고, 4,000미터 고지 정도에 이르기까지는 사투를 벌였습니다. 게다가 비가 오면서 오후에는 점점 기온이 떨어지는데 아프리카 날씨가 그렇게 춥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건기에도 비가 올 수 있다는 것, 7월의 아프리카가 추울 수 있다는 것은 몸으로 직접 체험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드디어 정상 등반을 위한 마지막 베이스캠프인 4,700미터 고지에 도착한 다음, 휴식과 수면을 취하고 밤 11시에 정상을 향한 등반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덟 시간 정도 더 사투를 벌여야 정상에 올라 감동적인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산행길은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력은 떨어지고, 숨은 차오르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고 들었지만 다행히 셰르파(Sherpa)의 도움으로 겨우 정상에 올랐습니다. 말로만 듣던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일출을 바라보았습니다.

몸의 한계를 거부하는 다짐과 각오는 용기가 아니라 만용입니다. 영화 〈와일드(Wild)〉는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라고 말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마음도 결국 두 손을 들게 됩니다. 몸의 한계가 마음의 한계입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은 대부분 몸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찾아옵니다. 마음으로 몸을 통제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몸은 마음이 거주하는 우주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은 값진 산행 체험이었습니다. 우주가 망가지면 그 속에 살아가는 마음도 같이 망가집니다. 킬리만자로 등반은 함께여서 가능했습니다. 등반(登攀)은 언제나 동반(同伴)이라는 사실은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기까지 내내 몸으로 새긴 교훈입니다.

혼자 정상에 오르는 외로운 여정이 아닙니다. 무거운 짐을 옮겨주는 포터, 음식을 마련해주는 요리사, 함께 길을 가며 안내하는 가이드와 셰르파 덕분에 힘든 산행도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킬리만자로로 떠난 동료들 덕분에 어려운 등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목적지로 향하는 희망의 연대가 작은 성취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도전은 자기 변신의 과정입니다. 시작과 끝이 다른 나를 만나게 되니까요. 도전을 시작할 때의 나와 도전을 마칠 때의 나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도전은 시작할 때의 나와 돌아올 때의 내가 손잡고 돌아오는 동행입니다. 그래서 떠남은 만남입니다. 자신의 한계는 직접 그 한계에 부딪혀봐야 알 수 있습니다.

우여곡절과 절치부심 끝에 체험한 킬리만자로 등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완벽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산악인이 말했듯 ‘등반의 완성은 올라가는 데 있지 않고 살아서 내려오는 데’ 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에 감사합니다. 지금 선 이 자리를 떠난 사람만이 낯선 마주침을 즐길 수 있으며, 지금 여기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던 길도 먼동이 터 오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꽤나 험난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정상이 보였다면 이런 도전을 감행했을까요. 우리는 저마다 희망을 움켜쥐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발을 뗐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측불허의 세계,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절망이 희망의 싹을 틔우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출발 후 약 아홉 시간의 사투 끝에 해발 5,895미터의 킬리만자로 길맨 포인트에 올랐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을 넘기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찾아옵니다.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조금만 걸어도 힘에 부쳐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가파른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기도 했지만 함께한 이들 덕분에 한계를 극복하고 오를 수 있었습니다.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길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도전보다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하나의 경험이었습니다. 정상 등반 인증 일련번호를 받고 보니 104,446번이었습니다. 정상 등반 후에 킬리만자로 4행시를 써봤습니다.

킬리(Kill理) - 기존 이치(理致)를 다시 따져 묻고 반추하며

만(萬) - 만 가지 지혜로 이르는 방법을 찾아보며

자(自) - 자기(自己)의 존재 이유(理由)와 자유(自由)로운 삶을 추구하다 발견한

로(路) - 노선(路線), 그 길이 바로 나답게 살아가는 삶

※ 참고자료 : 『아이러니스트: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EBS BOOKS, 2021)』

칼럼니스트 프로필/ 작품활동

유영만 칼럼니스트는 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유 교수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석사,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사랑한다. 오늘도 삶의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을 배우며 격전의 현장에서 현실을 매개로 진실을 캐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책 쓰기는 애쓰기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한 줄의 글이 위로가 된다면』 『독서의 발견』 『지식생태학』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외 다수가 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