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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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김이율 칼럼니스트] “23살, 1994년 ‘그래, 결심했어!’라는 유행어로 잘 알려진 MBC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휘재의 인생극장」의 방송 대본을 써 화려하게 방송계에 입문하다. 24살,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천호동 구사거리」가 당선돼 정식 희곡작가가 되다.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시나리오로 영화계에 진출하다. 25살, 대학로에서 연극 연출로 데뷔하다. 27살, 영화 「기막힌 사내들」 감독으로 데뷔하다.”

누구의 20대일까요? 대부분의 20대가 취업 준비로 청춘을 저당 잡히고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방황할 때, 방송과 연극 그리고 영화판을 넘나들며 승승장구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감독 ‘장진’. 그의 20대 의 모습입니다.

중년의 나이를 넘긴 그가 어느 강연에서 밝혔듯이 그 당시 자부심뿐만 아니라 우쭐거림이 하늘을 찔렀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천재라 불렀고 그 역시 스스로 천재가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그럴 만도 한 게 20대에 이미 탁월한 감각과 연출력으로 인생의 정점까지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그날따라 비가 억수로 내렸습니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이 무섭게 내리는 빗속을 뚫고 엉금엉금 거북이 운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차 한 대가 뭐가 그리 바쁜지 빗속을 뚫고 엄청 빠른 속도로 쉬잉 지나갔습니다.

‘저렇게 빨리 달리면 위험할 텐데.’ 집에 도착한 후, 빨리 달린 그 차를 떠올리며 그는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도착해보니 지옥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나 많은 추월을 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여정 속에서 겪게 된 경험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고만장했던 자신도 내려놓는 계기도 되었고요.

젊은 날에 작성한 그의 글귀가 오래도록 제 가슴을 울립니다. ‘도착해보니 지옥이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인생의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는 이 시점, 자꾸 내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걸까. 지금 가는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붉게 물든 석양을 볼 시간조차도 없이 그저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아무 생각 없이 내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빨리 빨리’만을 외치다가 놓쳐버린 가치나 행복이 얼마나 많을까. 결국 빨리 가봤자 최종 목적지는 죽음일 텐데 왜 그렇게 급한 건지...

그래야 합니다. 느긋함과 여유가 들어올 수 있게 마음의 창문을 열어놔야 합니다. 남들과 경쟁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늘 쫓기는 기분이 듭니다. 경쟁상대는 나 자신이고 수시로 내 꿈을 점검하고 내 발자국을 확인해야 합니다. 내 감정과 속도를 내 방식대로 컨트롤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스피드 시대인 만큼 속도가 중요하긴 하나 정박할 항구도 정하지도 않고 출항한다면 그 배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게 되고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목적이 없으면 작은 파도를 만나도 저항할 의지도 필생의 의욕도 사라져 금세 뒤집히고 맙니다. 목적이 없는 삶은 발전도 없고 그저 지칠 뿐이죠.

생태주의의 선구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저서를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성공을 향해 왜 안달을 하고 무모하게 덤벼드는가? 어떤 사람이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춤을 추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박자의 음악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박자가 느리든 멀리서 아련히 들리든 그가 듣고 있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있게 해줘라. 그가 사과나무나 떡갈나무만큼 빨리 성숙해야 할 이유는 없다.”

가는 방향이 옳다면, 그 여정 속에 행복과 꿈이 녹아있다면 설령 조금 늦더라도 그 삶은 아름다고 가치가 있을 겁니다. 부디 추월해서 먼저 지옥에 당도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내 길을 가야겠지요. 언젠가 그 길 위에서 만난다면 서로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어줍시다. 물 한 잔 혹은 술 한 잔 건네며 각자가 걸어온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꽃이 됩시다.

※ 참고자료: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새빛,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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