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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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유영만 칼럼니스트] ‘용접공(welder)’이라는 시계 브랜드가 있습니다. 제가 이 시계를 주목하는 이유는 발상이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밀함을 추구하는 시계 산업의 섬세한 이미지와는 좀 대조적이지요. 이 시계를 주문하면 용접공이 쓰는 공구박스처럼 생긴 상자에 담아서 보내줍니다. 이 시계의 파격적인 발상은 시계 가운데 쓰여 있는 ‘since 2075’라는 문구입니다. 정상적인 영문법에 따르면 since라는 단어 뒤에는 과거 시제가 와야 하는데, 이 시계는 미래 시제를 썼습니다.

시계가 내세우는 슬로건은 “Welding of Time”. 시간을 용접하겠다는 뜻입니다. 2075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우리가 보내는 매순간의 시간을 용접해서 2075년이라는 미래를 만들겠다는 발상처럼 들립니다. 니체 식으로 이야기하면 기존 정상적인 시간관념을 전복하고 비정상적인 역발상으로 평범한 시계를 색다르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만약 이 시계 회사가 ‘since 1975’처럼 평범하게 설립연도를 제시했다면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정을 거두어낼 때 새로운 것이 탄생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풍기에는 꼭 날개가 있어야 할까? 색다른 질문은 저항을 부르기도 하지만 감동을 불러오기도 하지요. 정상적인 질문은 정상적인 답을 갖고 오지만 비정상적인 질문은 비정상적인 답을 찾아옵니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선풍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부순 순간 태어난 비정상적 사유의 산물입니다. 침이 없는 스테이플리스 스테이플러(stapleless stapler)의 탄생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위예술 음악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으며 백남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곡가가 있습니다. 존 케이지입니다. 그가 작곡한 〈4분 33초〉라는 곡은 비정상적 사유가 얼마나 색다르고 창의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마르셀 뒤샹이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인 남자 소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출시했던 것만큼이나 충격적입니다.

〈4분 33초〉는 3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이 곡의 악보에는 음표 하나 등장하지 않습니다. 악보에 적힌 것이라고는 ‘I. Tacet’, ‘II. Tacet’, ‘III. Tacet’뿐입니다. 타셋(Tacet)은 침묵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곡은 공연장에서 연주되고 있습니다. 연주자가 등장하고 객석엔 관객이 있습니다. 연주를 통해 나오는 소리를 소거하는 대신 자연과 일상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됩니다. 연주자는 연주하고 청중은 그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음악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합니다. 음악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것이지요.

니체가 말하는 전복과 파괴, 그리고 가치의 전도는 개념의 재정의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그것도 음악이냐는 비난과 조롱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존 케이지는 악기가 내는 소리만 음악이 된다는 고정관념을 거부했습니다. 소음을 포함해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다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음악 개념을 제시한 것이지요.

모든 혁신은 원래 그런 세계, 당연하다고 생각한 일상, 으레 그런 것이라고 치부해버린 세상에 문제를 던져 시비를 걸고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일어납니다. 정의(定義)를 바꾸지 않으면 남이 정의한 세계에 갇혀 살 수밖에 없습니다. 혁명을 일으키고 혁신을 주도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만의 정의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았다는 점입니다. 정의를 바꿔야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 참고자료 : 『아이러니스트: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EBS BOOKS, 2021)』

칼럼니스트 프로필/ 작품활동

유영만 칼럼니스트는 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유 교수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석사,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사랑한다. 오늘도 삶의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을 배우며 격전의 현장에서 현실을 매개로 진실을 캐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책 쓰기는 애쓰기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한 줄의 글이 위로가 된다면』 『독서의 발견』 『지식생태학』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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