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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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유영만 칼럼니스트]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이론은 문맥에 따라 동일한 말이라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상황에 따라 말의 의미를 포착해서 맥을 잘 짚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말이 왜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맥을 못 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후자를 숙맥(菽麥)이라 합니다. 그런데 언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이 맥락적 사유가 잘 이루어져야 상대와의 소통이 잘 되는데 숙맥일 경우 관계 맺기에도 문제가 생기겠지요.

모든 발언(發言)은 언제나 맥락을 배경으로 그 의미가 전달되고 이해됩니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발언을 했는지를 알면 발언자의 진의(眞意)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언이 이루어진 맥락을 거세하고 텍스트 메시지만을 드러내면 발언자의 진의와 관계없이 심각한 의문의 표현으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전달자의 진의와 진의에 대한 청중의 의미 해석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만약 메시지가 사용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때 농담은 진담으로 받아들여져 성적 비하 발언이나 청중을 무시하는 언사로 오해되기도 하지요.

한 강연자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를 잠시 보여주고 바로 감춘 다음 방금 본 작품과 똑같은 자세를 취해보라고 요구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때 작품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강연자는 다시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를 보여주고 방금 자신들이 취한 자세가 얼마나 실제와 다른지를 실감하고 생각해볼 기회를 줍니다. 사진 속의 로댕은 오른쪽 팔꿈치를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한 대로 오른쪽 팔꿈치를 책상에 올려놓거나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의 변화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충’ 보고 ‘대충’ 생각하지요. 실험 뒤에 강연자가 이런 농담을 합니다. “오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은 자세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봐서 ‘생각이 없는 인간’들만 강연에 참석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강사가 “우리에게 생각이 없는 인간”이라고 비난을 했다고 항의를 할 수 있습니다. 농담으로 던진 발언이 누군가에게는 진담으로 다가간 것이지요.

강연을 처음부터 듣지 않고 중간부터 들은 사람일 수도 있고, 말의 맥락 자체를 오해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없는 인간’이라는 말은 전후좌우 배경 설명과 맥락적 이해 없이 사용될 때는 비하 발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것이 쓰인 맥락에 따라 가벼운 농담이 되기도 합니다.

※ 참고자료 : 『아이러니스트: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EBS BOOKS, 2021)』

칼럼니스트 프로필/ 작품활동

유영만 칼럼니스트는 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유 교수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석사,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사랑한다. 오늘도 삶의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을 배우며 격전의 현장에서 현실을 매개로 진실을 캐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책 쓰기는 애쓰기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한 줄의 글이 위로가 된다면』 『독서의 발견』 『지식생태학』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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