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도영태 칼럼니스트] 과거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던 그렇지 않던 그것이 현실의 삶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까? 한때 잘나갔던 과거를 상기하여 아련히 동경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고 과거 잘못된 행적에 대한 후회를 머금어 봐야 현실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오히려 잘났던 과거는 현실의 초라함만 더 일깨우고 후회스런 과거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그 잔상으로 하여금 지근지근 나를 괴롭히고 현실의 추진력을 잃게 하고 자신감을 움츠러들게 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에서 덮을 것은 덮고 묻을 것은 적당히 묻고 가야 한다.

타인의 과거에 대한 집요한 파헤침도 중단해야 한다. 네티즌들은 연예인들의 과거를 추적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정치인들은 상대방의 과거의 오점을 찾기에 비장함을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는 지극히 소모적인 행동이다.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의 과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다소 불편한 과거의 진실은 지금 현재 그들의 노력과 역량을 보고 면죄부를 주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 개인에 대한 지나친 과거사 규명은 온전한 현실과 미래 개척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지나치게 과거를 묻거나 스스로 떠올리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한없는 스트레스가 된다.

만일 어떤 부부가 과거에 잠시 사귄 애인을 들추어 보라. 신경 쓰다 병이 생기고 화목하게 잘 굴러가는 현재 가정에 재만 뿌리게 된다. 그런 과거는 과거의 일로서 서로 이해하고 대충 두루뭉술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시시콜콜한 과거를 들추어 유능한 인재의 등용을 방해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도 손해이다.

사실 누구나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미련일랑 그만 떠나보내는 게 좋겠다. 과거의 꼬리표 때문에 현실에서는 무기력한 부채질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중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부분은 과거의 실패가 족쇄가 되어 바람직한 현재형과 미래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거나 굴절된 현실을 한탄하기에 또 그렇게 좌절한다. 과거에 잘 나가다가 1차적으로 뭔가 큰 피해를 입었다면 이후의 2차, 3차 피해로 연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과거에 대한 집착과 정신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추가적인 피해가 가중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선에서 과거를 청산하도록 하자. 빛나는 과거는 추억의 방울로서만 기억하고 떳떳하지 못한 과거가 있다면 현실에서 깊이 반성하고 더더욱 노력으로 과거에 대한 보상을 찾으면 된다.

‘예전엔 잘 나갔는데’가 아니라 ‘앞으로 잘 나가야 할 텐데’이며,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가 아니라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이다. 특히, 과거의 연상으로 말미암아 내 삶이 조금이라도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면 과감하게 그 집착의 올가미를 벗어던져야 한다. 누군가 말했다. “과거는 단지 지나간 역사(History)에 불과한 것이라고!”

과거를 그저 History로서 생각하지 않고 과거에 대한 Hysterie(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은 좀 짜증난다. 과거에 대한 평가의 단어는 냉정함, 집요함, 민감함 보다는 관대함, 대충함, 무덤덤함이 잘 어울린다. 이제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자.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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