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유영만 칼럼니스트] 배리 슈워츠와 케니스 샤프에 따르면, 실천적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거리감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고, 다른 이의 관점에 너무 깊이 빠져들면 주어진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없습니다.

공감하는 의사는 미묘한 감정적 실마리를 알아차리는 통찰력과 상상력이 있으며, 말로 표현하지 않는 몸짓 언어와 얼굴 표정을 읽어내는 예민함이 있습니다. 현명한 의사는 공감을 통제하고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실천적 지혜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생각만 하는 것으로는 배울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딜레마 상황을 겪으며 그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심사숙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해보는 체험적 각성이 축적될 때 비로소 생기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앎을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실천적 지혜는 몇 가지 변수를 기계적으로 조합해서 대안을 찾아내는 과정에서는 습득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만고불변의 보편적 진리가 통용되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누가 그 상황에 개입되어 의사 결정을 이루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실천을 유도하는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사실적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기본 전제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문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실천으로 가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타자의 입장이 되어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없습니다. 딜레마 상황에서 도덕적-윤리적으로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판단인지를 숙고하는 능력을 갖추기에는 여러 한계가 있습니다.

설명은 ‘실증’을 기다리는 현실의 미묘한 힘을 다른 삶의 높이에서 통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삶에서 실증된 지식으로 이 삶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필연의 맥락에 갇혀 과거로만 현재를 설명하는 모든 이론적 이해는 우리를 위로하거나 한탄하게 할 뿐 실천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황현산, 『잘 표현된 불행』>

설명과 이론의 무력함과 허망한 한계를 꼬집는 말 중에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설명을 들을수록 바보가 된다는 『무지한 스승』의 저자 자크 랑시에르의 ‘설명의 무한 퇴행론’과 일맥상통하는 말인 듯합니다. 설명은 이미 실증된 지식으로 현실의 가능성을 새로운 관문으로 유도하지 않고 과거의 지식으로 현재를 가둬버리는 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론적 이해 역시 지금 여기서 겪고 있는 현실의 아픔을 설명하고 해석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줄 수 있지만 이론 탄생 시점이 과거였기에 그 자체만으로는 과감한 실천을 촉발시킬 수 없습니다.

설명과 이론적 이해의 무력한 한계와 허망한 폐해를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실천적 지혜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실천적 지혜는 회색 지대에서 고뇌를 거듭하는 인간에게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가장 현명한 답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작품활동

유영만 칼럼니스트는 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수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사랑한다. 오늘도 삶의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을 배우며 격전의 현장에서 현실을 매개로 진실을 캐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책 쓰기는 애쓰기다』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등 90여권이 있다.

※ 참고자료 : 『아이러니스트: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EBS BOOK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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