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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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유영만 칼럼니스트] ‘암묵적 지식’은 폴라니가 고안한 개념입니다. 알고 있지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지식입니다. 어머니의 ‘손맛’ 같은 것이죠. 손맛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엄마표 김치맛을 터득하려면 엄마하고 장기간 합숙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가 레시피를 아무리 자세하게 작성해도 담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암묵적 지식이지요. 문서화해서 언어를 통해 외면화시킬 수 없는 지식입니다.

마이클 폴라니는 형식화, 객관화, 문서화, 계량화라는 이름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지요. 반면에 명시적 지식은 매뉴얼이나 문서로 외면화된 지식입니다. 하지만 순수한 명시적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지식은 암묵적이거나 암묵적 지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암묵적 지식과 명시적 지식은 분리되어 존재하는 두 가지 지식이 아닙니다. 편의상 구분한 것일 뿐입니다. 일종의 양쪽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고 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왼쪽 극단에는 명시적 지식이 있고 오른쪽 극단에는 암묵적 지식이 위치한다고 생각해본다면, 엄마표 김치맛을 내는 데 필요한 지식은 암묵적 지식입니다. 다만 그것을 명시적 언어로 드러낼 수 있는 측면이 있고 그럴 수 없는 측면이 있을 뿐입니다.

폴라니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요. 다만, 알고 있는 바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뿐이라고요.

“사실은 우리가 증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알고 있는 그 지식이야말로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의 토대이며, 또 그것의 타당성을 보장해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간과해버렸다. <마이클 폴라니, 『개인적 지식』>

알고 있는 지식은 전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빙산 중 겉으로 드러나 있는 20퍼센트, 그것이 바로 명시적 지식이고, 보이지 않는, 수면 밑에 잠재되어 있는 80퍼센트가 바로 암묵적 지식입니다. 문제는 조직에서 지식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암묵적 지식보다 보이는 명시적 지식을 창조하고 공유하는 환경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증명할 수 있는 지식은 증명할 수 없는 지식에 비해 극히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과학적 탐구 대상에서 제외시켜버리는 오만을 떨고 있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결정한다

폴라니에 따르면, 보조식(subsidiary awareness)과 초점식(focal awareness)이라는 개념은 암묵적 지식과 명시적 지식에 상응합니다. 예를 들면 망치로 못을 박을 때 나는 망치로 내리치는 못대가리에 의식적으로 초점을 둡니다. 못을 쥐고 있는 손을 망치로 내리치지는 않을까 하고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널빤지에 못을 똑바로 박기 위해서는 수많은 다른 동작들이 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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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로 내리치는 힘을 조절해야 하고, 그 사이에 못을 잡고 있는 손은 못이 삐딱해지지 않도록 힘을 주어야 합니다. 망치를 잡고 있는 손이 어느 정도 각도와 회전을 유지한 상태에서 못 상단 부분을 정확히 내리쳐야 못을 잡고 있는 손도 다치지 않고 못이 널빤지에 똑바로 박힙니다.

못을 널빤지에 박기 위한 동작 중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가운데 못 박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보조식입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초점식은 명시적 지식이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못을 똑바로 박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든 인식을 보조식이라고 하며 거기서 탄생하는 지식을 암묵적 지식이라고 합니다.

암묵적 지식과 보조식의 도움을 받지 않는 명시적 지식과 초점식은 없습니다. 전문가의 초점식은 수많은 변수가 동시에 관여하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완벽한 하모니의 결과로 보이는 인식입니다. 심지어 못을 박는 과정에서 호흡 조절만 잘못 해도 망치는 초점을 잃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리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배경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할 때 전경으로 드러나는 게 초점식입니다. 전경으로 드러난 초점식은 보이지 않는 배경에서 관여하는 무수한 보조식 덕분에 빛나게 보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책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서론을 쓰고, 본론의 내용을 구조화시켜 정리하고 결론을 쓴 다음 제목을 정하는 활동은 초점식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서론을 쓰는지, 서론을 쓰기 위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 서론에 동원하는 다양한 논리적 근거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일관성 있게 정리가 되는지, 제목은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 본문의 구조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 그렇게 구조화된 것인지, 결론은 왜 그런 내용으로 화룡점정하게 되었는지를 일일이 다 밝혀내서 언어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동시에 머릿속에서 돌아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디어가 나왔다가 사라지고 어떤 아이디어는 채택되어 기존 아이디와 합병되면서 제3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뻗어나갑니다. 왜 이렇게 정리되는지 명시적으로는 설명해낼 수 없습니다. 이런 과정에 관여되는 인식이 보조식이고 보조식으로 창조되는 지식이 암묵적 지식입니다.

※ 참고자료 : 『아이러니스트: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EBS BOOKS, 2021)』

칼럼니스트 프로필/ 작품활동

유영만 칼럼니스트는 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유 교수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석사,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사랑한다. 오늘도 삶의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을 배우며 격전의 현장에서 현실을 매개로 진실을 캐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책 쓰기는 애쓰기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한 줄의 글이 위로가 된다면』 『독서의 발견』 『지식생태학』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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