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윤성희 칼럼니스트] 유튜브에서 매번 찾아 듣는 피아노 협주곡이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첫 피아노 터치부터 설렘과 웅장함을 자아낸다. LG전자 시그니처 광고 음악으로 쓰이는데, 영상을 보면 음악만으로도 무게감과 고급스러움을 모두 잡아낸 느낌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뛰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 나의 어릴 적 꿈과 같았기에 그의 음악 세계가 끌렸다.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과는 다른 섬세함과 감동적인 피아노 선율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아침마다 이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다 보면 어떤 슬픈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것은 라흐마니노프의 슬럼프에 대한 감정이다. 그가 처음으로 작곡한 피아노 교향곡의 반응이 별로였기 때문에 슬럼프가 왔다. 워낙 피아니스트로서 실력이 뛰어났고 자신만만했던 그였기에 충격이 컸을 것이다. 슬럼프는 그를 3~4년 동안이나 작곡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처음 강사를 시작했을 때 나도 그랬다. 음악 인문학 강의를 하러 대전 출장을 갔을 때의 이야기다. 에어컨이 고장 나서 더위에 지쳤고, 준비했던 실습도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다. 교육생의 한마디는 나를 패닉에 빠뜨렸다.

“이 실습을 대체 왜 해야 합니까?”

지금이야 그때의 사건을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당시에는 강사를 그만둘까 고민할 만큼 힘들었다. 막막하고 답답했지만 1인 프리랜서 강사이다 보니 어디 하소연할 때가 없었다. 이럴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버티기로 했다.

라흐마니노프도 버텼다. 일단 본인이 잘하던 피아노 연주에 집중하면서 몇 년간 내공을 쌓았다. 그러다가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작정하고 작곡을 시작했고, 완성한 곡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슬럼프에 대한 기억, 슬픔과 기쁨, 애환과 위로의 감정이 협주곡 오선지 위에 그려졌다. 초연에서 큰 호평이 있었고 그는 슬럼프를 극복했다.

종종 ‘지금’의 내가 과거의 대전 강의장으로 가서 음악 인문학 강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할 자신이 있다. 100회 이상 같은 주제로 강의를 하다 보니 프로그램의 완성도와 함께 깡도 커졌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버틸 힘도 필요하다.

라흐마니노프는 향후 미국과 유럽에서의 활동이 순탄했기 때문인지 소련 체제에 반대했다. 그 보복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고향을 향한 그리운 감정이 과거에 작곡했던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느껴진다. 희한한 일이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만든 곡이어서 그런 감정까지 전달되는 것 같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은 단기전이 아니다. 우선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느슨하게 가져야 한다. 해결책은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당시에는 심각해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일 뿐이다. 슬럼프가 생긴 시점의 나 자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이후 생기는 새로운 경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성급할 때가 많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친구와의 약속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재미가 없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기다림, 인내심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시간은 화살 같다고 흔히 표현하지만, 인생은 길다고 하지 않던가. 살다 보면 슬럼프도 오고 새로운 기회도 다가온다. 슬럼프 당시의 슬픔에 집중하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며 인내하고 기다리자. 자신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줄 용기를 갖자.

윤성희 칼럼니스트는 인문학 강사이자 자동차, 모빌리티 전문가로서 활동 중이다. 국민대학교 대학원 기계학 석사, 온석대학원대학교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와이엔듀 대표, 사단법인 한국자동차영업인협동조합(KADCA) 위원 및 폭스바겐그룹코리아 직무 트레이너로 활동 중이다. 시도청과 기관에서 인문학 강사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당신이 영화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셀프코칭,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관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