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이미숙 기자] 17일(일)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1985 남영동, 김근태의 강요받은 자백' 편이 방송된다.

[사진출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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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하고 폭력혁명을 계획했다”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김근태는 자백을 강요받았다. 반국가단체를 결성해 국가 전복을 기도하고 폭력혁명을 계획했다는 것. 그리고 북한에 방문한 사실과 간첩 혐의까지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사형에 이를 수도 있는 중범죄였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자백. 김근태는 왜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자백했을까?

남영동 대공분실은 80년대 대표적인 대공 수사기관이었다. ‘천재 건축가’ 김수근이 건축한 고문 공장이자 간첩 공장! 김근태는 이곳에서 22일 동안 10회에 걸친 고문을 받았다. 한번 시작하면 5시간씩 지속된 고문. 그들이 원한 것은 ‘무조건 항복’이었다. 김근태는 이때의 고문을 이렇게 회상했다. 

김근태를 고문한 이는 바로, 고문 기술자 이근안. 장의사 집 둘째 아들이라 불리던 그는 공포, 그 자체였다. 90kg에 육박할 것 같은 체구와 조직폭력배 같은 외모. 이근안은 “너를 깨부술 것이다”라는 섬뜩한 말과 함께 스스럼없이 고문을 자행하는데...

[사진출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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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무소불위의 권력의 그에게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도 통제할 수 없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대학생?!

레이건 대통령과 요한 바오로 2세의 잇따른 방한, 그리고 88 서울올림픽까지.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쏠리고 있던 상황, 그러나 전두환 정권을 경악하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대학생들이 서울 미 문화원을 점거한 것!

전두환은 다급하게 ‘학원 안정법’을 내놓아 대학생들의 시위를 잠재우려 했지만, 이는 각계의 반대에 부딪혀 잠정 보류된다. 각하의 분노는 점점 극에 달하기 시작하고...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30~40대 역전의 용사들이 모여 만든 조직. ‘민주화운동청년연합회(민청련)’. 민청련은 공개적으로 현판을 내걸고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시작한다.

시위의 선두에 섰던 이는, 민청련 의장 김근태였다. 결국 김근태는 남영동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게 되는데...자세한 이야기는 9월 17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426회 ‘1985 남영동, 김근태의 강요받은 자백’>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근태 프로필/도서> 19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다. 1972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한양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와 우석대 겸임교수, 새천년 민주당 최고위원 당선, 연변대학교 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한반도평화와 경제발전전략연구재단 이사장, 국민참여 통합신당 원내대표, 열린 우리당 원내대표, 제17대 국회의원 등을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에 취임했으며, 열린우리당 의장, 통합민주당 상임고문을 지냈다. 향년 64세를 일기로 2011년 12월 30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지은 책으로 옥중서간집 <열린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 <우리 가는 이 길은>, 사회비평집 <희망의 근거> <희망은 힘이 세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다오> 등이 있다.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와 '이야기'의 만남, 우리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가 바뀐 결정적인 하루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역사가 움직인 터닝 포인트인 '결정적 하루'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교양과 재미가 있는 인포테인먼트(정보 오락) 프로그램이다. 그날의 주연과 조연은 누구였으며, 그 당시 세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고,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출연진이 수다로 풀어보는 본격 역사 토크쇼이다. 프로그램 정보, 공식영상, 회차 정보, 출연진(최원정·최태성·이시원·허준 외) 등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지식 다큐멘터리 방송이다. 최고 시청률은 6.7%(제공 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방송시간은 일요일 밤 9시 4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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