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사신문 이미숙 기자] 25일(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아들을 위하여- 조선의 킹메이커’ 2편 <혜경궁 홍씨, 아들 정조를 지키다>가 방송된다.

[사진출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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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영조 38년 임오년, 조선왕가에 유례없는 비극이 일어난다. 영조가 기행을 거듭하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버린 것. 비극의 주인공 사도세자 뒤에는 남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비극의 주인공, ‘혜경궁 홍씨’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위기 속에서 어린 아들 ‘정조’를 지켜야만 했다.

왕가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혜경궁 홍씨는 이 비극 앞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리고 이 시련을 딛고 정조를 어떻게 성군으로 키웠을까? 아들을 지킨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를 그가 남긴 기록, <한중록>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혜경궁 홍씨, 사도세자와 부부의 연을 맺다

“동궁(사도세자)의 글 읽는 소리도 크고 맑았으며(...)

좋은 명성이 많이 떠돌았다

-한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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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는 열 살에 궁궐에 들어와 사도세자의 부인이 된다. 입궐 후 혜경궁 홍씨가 본 어린 사도세자는 총명하고 믿음직한 남편이었다. 그러나 남편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를 이상하리만큼 두려워하고 있었다. 혜경궁 홍씨가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남편 사도세자와 시아버지 영조의 관계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조선 최연소 왕세자 사도세자의 조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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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나이 마흔둘에 사도세자가 태어난다. 첫째 아들 효장세자를 잃은 후 16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기에 영조는 왕세자 교육을 서두른다. 호학군주(好學君主)를 이상적 군주라고 생각했던 영조는 사도세자가 학문에 뛰어난 왕이 되길 원하며 어린 사도세자에게 엄정한 조기교육을 시켰는데...

과연 영조의 조기교육은 효과가 있었을까? 학문에 정진하길 바랐던 영조의 기대와 달리 사도세자는 다른 분야에 관심을 보인다.

사도세자의 원대한 꿈! 조선 무예를 통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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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무예가 없었던 조선 후기, 무예에 관심이 많았던 사도세자는 통일된 조선 무예를 정립하고자 하는 꿈을 가졌다.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회원들의 화려한 무예 시연을 통해 사도세자가 만들고자 했던 조선 표준 무예를 살펴본다.

그리고 사도세자가 즐겨 쓴 무기의 정체와 그 무기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혜경궁 홍씨, 아들을 지키다

[사진출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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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사망하기 전 이미 폐세자가 된다. 자연스럽게 아들 정조의 왕위 계승이 불안해지게 되는데... 만일 부자간 갈등이 정조에게까지 대물림된다면 정조의 안위마저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

결국 혜경궁 홍씨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로서 쉽지 않은 선택을 한다. 혜경궁 홍씨가 내린 결정은 무엇이었을까?

사도세자의 죽음 14년 후, 정조는 마침내 왕위에 오른다. 왕이 된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지난날의 비극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혜경궁 홍씨와 그 아들 정조가 왕실의 비극을 딛고 선택한 길은 무엇이었는지 5월 25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살펴본다.

*정조와 혜경궁으로서의 삶 : 16살이 된 세자빈 홍씨는 1750년(영조 26)에 첫째 아들을 낳았다. 이가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1752)이다. 영조에게는 첫 손자였지만, 전혀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들을 낳다 죽은 딸 화평옹주를 생각하며 오히려 슬픔에 젖었다. 그래서인지 의소세손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8세 어린 나이에 아들을 잃는 고통을 겪은 세자빈 홍씨는 그해 가을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훗날의 정조이다. 잃어버린 아들과 새로 얻은 아들, 20살도 안 된 나이에 그녀는 이미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달은 여인이 되어갔다.

영조는 죽은 세자를 폐서인했다. 폐서인이란 세자를 폐위하여 평민으로 만든다는 의미이다. 세자빈 홍씨도 더 이상 세자빈이 아니었다. 어느덧 28살의 나이가 된 홍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사도세자가 복위됨에 따라 다시 세자빈 신분을 되찾았고 궁궐로 들어갔다. 이제 홍씨에게 남은 희망은 아들을 잘 키워 훌륭한 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아버지 영조와 불화한 남편 사도세자의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되었다. 홍씨는 시아버지 영조의 성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궁궐로 재입궁한 뒤 몇 개월이 지나 만난 영조에게 홍씨는 “저희 모자가 보전함은 모두 전하의 성은이로소이다.”라며 원망과 비난 대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 홍씨의 태도에 영조는 “내가 너를 볼 마음이 어려웠는데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니 아름답구나.”라며 감격해 했다. 영조는 그녀의 효행을 칭찬하고 표창까지 내렸다. 시아버지의 신임을 얻은 것이다. 홍씨의 희망대로 영조와 세손 사이에는 유대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1764년(영조 40) 7월 사도세자의 생모인 선희궁이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영조는 12년을 더 살았다. 선희궁도 죽자 궁궐 안에 홍씨를 후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에는 그녀를 감시하고 도전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게다가 남편과 자식 없이 궁궐 생활을 했던 화완옹주는 세손을 마치 자기 아들인 양 독점하려 들었다. 어느 날 영조는 세손을 죽은 효장세자의 후사로 삼는다고 했다. 효장세자는 10세의 나이로 요절한 영조의 장남이었다. 효장세자의 후사가 된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홍씨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남편을 잃고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어나갔던 홍씨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 일에 대해 홍씨는 [한중록]에서 다음과 같이 억울한 심정을 토해냈다.

“위에서 하시는 일을 아랫사람이 감히 이렇다 하겠나 마는 그때 내 심정은 망극할 따름이었다. 내가 임오년 화변 때 모진 목숨을 결단치 못하고 살아 있다가 이런 일을 당할 줄이야. ”

화완옹주와 젊디젊은 왕비 김씨의 도전에도 홍씨는 세자를 잘 지켜냈다. 1776년 3월 마침내 혜빈 홍씨의 아들이자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가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생모인 혜빈 홍씨를 혜경궁(惠慶宮)으로 높이고 지성으로 효도를 다했다. [조선왕조실록]기록에 따르면, 혜경궁은 젊은 시절부터 몸에 종기가 자주 나는 지병이 있었다고 한다. 정조는 모친이 부스럼으로 고통으로 받자 궁중 내의원들을 물리치고 밤새 손이 퉁퉁 부을 때까지 약을 발라주었고 이런 효성에 씻은 듯이 낫기도 했다고 한다.

혜경궁이 환갑이 되던 해에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수원으로 행차했다. 사도세자가 죽은 지 32년 만에 남편의 무덤인 현릉원에 간 것이다. 실로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얻은 보상이었다. 혜경궁 홍씨는 정조 사후에도 15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1815년(순조 15) 12월 15일에 81세의 나이로 창경궁에서 사연 많은 삶을 놓아두고 세상을 떠났다.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지난날 몸소 겪었던 일들을 서술한 것으로, 부군(夫君) 사도세자가 부왕(父王)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참변을 주로 하여, 공적, 사적 연루와 국가 종사에 관한 당쟁의 복잡미묘한 문제 등 여러 사건들 속에서 살아온 일생사를 순 한글의 유려한 문장으로 묘사한 파란만장한 일대기이다. 문체에 등장인물의 성격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으며, 이 글을 통하여 조선 여성의 이면사(裏面史)를 엿볼 수 있다는 점과 당시의 정치풍토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역사저널 그날> '역사'와 '이야기'의 만남. 우리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가 바뀐 결정적인 하루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역사가 움직인 터닝 포인트인 '결정적 하루'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교양과 재미가 있는 인포테인먼트(정보 오락) 프로그램이다. 그날의 주연과 조연은 누구였으며, 그 당시 세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고,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출연진이 수다로 풀어보는 본격 역사 토크쇼이다. 프로그램 정보, 공식영상, 회차 정보, 출연진(최원정·정병준·박태균·최태성·이시원 외) 등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지식 다큐멘터리 방송이다.

 참고자료 : 혜경궁 홍씨-[한중록]을 남긴 사도세자의 비  정조의 어머니 (인물한국사, 정성희, 장선환), 한중록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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