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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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강사신문 유영만 칼럼니스트]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사고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했지요. 여기서 ‘언어의 한계’는 여러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개념을 주기적으로 습득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언어적 한계가 올 수 있고, 기존 개념을 이전과 다르게 의미를 부여해서 재개념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언어적 한계에 봉착합니다. 색다른 개념과 부단히 접속할 뿐만 아니라 익숙한 개념의 색다른 용법을 배우는 노력을 전개할 때 언어적 한계는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중에 외국어로 번역이 불가능한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말들이 있습니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단어들의 뜻과 서로 다른 차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방망이와 몽둥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방망이는 태어날 때부터 목적과 용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빨래방망이, 야구방망이처럼요. 몽둥이는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몽둥이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마개와 뚜껑이라는 단어도 있지요. 화가 날 때 뚜껑이 열린다고 하지, 마개가 열린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뚜껑은 겉 표면만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탄산음료 병의 뚜껑이나 물병 뚜껑, 소주나 맥주병 뚜껑처럼 겉에서 용기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겉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게 뚜껑입니다. 반면에 마개는 와인병의 코르크처럼 안으로 들어가서 내용물의 유출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거하는 행위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마개는 잡아서 뽑아내는 것이고 뚜껑은 돌려서 따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좀 더 난이도가 높은 단어를 볼까요. 엉덩이와 궁둥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궁둥이는 여러분이 의자에 앉았을 때 의자하고 내 살이 닿는 접촉 부위만을 말합니다. 볼기의 아랫부분으로 앉으면 바닥에 닿는 부분입니다. 나머지 의자에 닿지 않는 궁둥이 부위에서 허벅지 위쪽 부위 정도까지를 엉덩이라고 합니다. 한자로 둔부(臀部), 영어로 히프(hip)라고 하지요.

이번에는 한자 표현을 예로 들어볼까요. 직업을 표현한 말 중에 회사원(會社員)과 예술가(藝術家), 대사(大使), 판검사(判檢事)와 변호사(辯護士), 그리고 교사(敎師)는 각각 원(員)과 가(家), 다른 의미의 사(使, 事, 士, 師)로 끝나는 한자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직업의 보편적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한자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원(員)으로 끝나는 직업, 예를 들면 회사원(會社員), 공무원(公務員), 종업원(從業員), 세관원(稅關員), 미화원(美化員), 경비원(警備員), 특파원(特派員), 상담원(相談員), 판매원(販賣員), 안내원(案內員), 승무원(乘務員), 은행원(銀行員), 교환원(交換員), 취재원(取材源). 집배원(集配員)은 특정 조직에 소속되어 있어 일정한 시간에 출근해서 주어진 시간 동안 일을 하고 퇴근하는 직업입니다.

한마디로 특정 조직이나 기관의 일원(一員)이 된 사람입니다. 일원이 된 사람은 반드시 남의 집으로 출근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물론 남의 집으로 출근하는 일이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만 일원이 된 사람은 지켜야 할 규칙과 의무가 있고 책임을 지고 일정한 기간 안에 주어진 목표를 달성해야 됩니다. 일원이 된 사람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어느 정도 매일 반복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가(家)’로 끝나는 직업은 ‘원(員)’으로 끝나는 직업과 어떻게 다른가요? 평론가(評論家), 소설가(小說家), 문학가(文學家), 사상가(思想家), 연출가(演出家), 비평가(批評家), 작곡가(作曲家), 예술가(藝術家), 성악가(聲樂家), 조각가(彫刻家), 건축가(建築家), 미식가(美食家), 탐험가(探險家), 수필가(隨筆家), 여행가(旅行家), 저술가(著述家), 역사가(歷史家), 만화가(漫畵家), 무용가(舞踊家), 서도가(書道家) 등 무수히 많은 직업이 가(家)로 끝납니다. 이들 직업이 ‘-원(員)’의 직업에 비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특정 기관에 소속되어 활동하기보다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이라 자기 집(家)이 있다는 점입니다.

일원이 된 사람과 일가를 이룬 사람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인지 아니면 남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인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일원이 된 사람은 소속된 조직이나 기관에서 이미 결정된 일을 일정한 방식으로 해내야 되지만 일가를 이룬 사람은 저마다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자기 색깔과 스타일을 드러내지 않으면 자기다움을 상실하고 곧 존재 이유를 잃어버립니다. 이들은 비교 기준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어제의 나입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피카소와 비교하지 않고,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톨스토이의 스타일을 모방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스타일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할 뿐이죠. 경쟁 상대는 오로지 어제의 나입니다. 나아지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경지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언 다르고 어 다르다』의 저자 김철호는 비애(悲哀)의 비(悲)가 일시적이고 옅은 슬픔이라면 애(哀)는 슬픔보다 서러움 또는 설움에 가깝다고 합니다. “슬픔이 비교적 짧게 지나가는 감정인 데 비해 설움은 웬만해서는 사라지지 않는 길고도 깊은 감정”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애절(哀切)한 애원(哀願)이나 애걸복걸(哀乞伏乞)하는 사람 앞에서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애인(愛人)과 연인(戀人)은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칭하지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애인은 주로 구어체 문장에서 연인은 문어체 문장에서 고풍스럽게 사용된다고 그 차이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애인은 사랑하는 어떤 상대를 지칭하지만 연인은 사랑하는 남녀 두 사람을 지칭한다는 것입니다. “다정한 연인이 손을 잡고 있다”는 어색하지 않지만 “다정한 애인이 손을 잡고 있다”는 말은 어색하지 않나요?

※ 참고자료 : 『아이러니스트: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EBS BOOKS, 2021)』

칼럼니스트 프로필/ 작품활동

유영만 칼럼니스트는 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유 교수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석사,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사랑한다. 오늘도 삶의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을 배우며 격전의 현장에서 현실을 매개로 진실을 캐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책 쓰기는 애쓰기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한 줄의 글이 위로가 된다면』 『독서의 발견』 『지식생태학』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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