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사진출처=Pixabay]

인간에게는 두 가지 충동이 있다.

하나는 창조의 충동, 다른 하나는 소유의 충동이다.

창조의 충동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충동이다.

이 점에서 소유의 충동보다 우위에 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창조의 충동을 계발하고 강화하는 데 있다.

창조의 충동이야말로 새로운 삶을 여는 열쇠이다.

―버트런드 러셀

[한국강사신문 김이율 칼럼니스트] 모방에서 시작된 창조가 있는가 하면 기존의 것을 파괴함으로써 얻게 되는 창조도 있다. 생각의 파괴, 기존 질서의 파괴로 널리 이름을 알린 사람들 중에는 피카소나 앤디 워홀 같은 인물들이 있지만 이런 사람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상식 파괴자가 있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이자 백남준의 정신적인 스승인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가 바로 그다.

1952년 8월, 미국 뉴욕의 한 야외 공연장.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피아니스트가 걸어 나와 정중히 인사를 하자 청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청중은 존 케이지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곧이어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청중은 설렘과 기대감에 상기된 표정으로 곧 흘러나올 음악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피아니스트는 존 케이지의 악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기만을 여러 번 반복할 뿐 전혀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났다. 그러자 청중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연주를 안 하는 거야?”

“혹시 악보를 잃어버렸나?”

그 후로도 피아니스트는 계속해서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더니 정확히 4분 33초가 지나자 피아니스트는 청중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피아니스트는 왜 연주를 하지 않은 걸까? 바로 존 케이지가 건넨 악보에 음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존 케이지는 텅 빈 악보에 침묵과 청중의 목소리, 그리고 객석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조그만 웅성거림과 소음을 담아낸 것이다. 그는 그것 또한 음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존 케이지는 ‘상상적 풍경 4번’이라는 작품도 발표했다. 이 작품 역시 악기 연주 대신 라디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향을 들려주는 게 전부였다. 당시 음악평론가들은 음악계의 이단자라며 그의 작품 세계를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는 기존의 관습적인 음악에서 탈피해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펼친 새로운 음악의 선구자임에 틀림없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김이율 칼럼니스트는 광고회사 ‘제일기획’, ‘코래드’ 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다. 현재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미래를 읽는 통찰로 책 집필에 전념하고 있으며 더불어 책쓰기 코칭 및 인문학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너만 바라보며 언제나 따듯한 봄날이었지』『가슴이 시키는 일』『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과거에게 먹이를 주지 마라』등 다수가 있다. 
 

주요기사

키워드

##김이율
저작권자 © 한국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