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출처=네이버영화 포토]
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출처=네이버영화 포토]

[한국강사신문 윤은기 칼럼니스트] 살아있는 전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가슴 벅찬 울림을 준다. 최근 한국 영화계의 영원한 스타이신 신영균 선생님을 모시고 오찬을 함께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공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역임한 원인철 대장과 신 선생님의 아드님까지 네 사람이 함께했다. 세대를 넘고 분야를 넘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단 하나다. 영화 ‘빨간 마후라’가 가진 애국심의 무게와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빨간 마후라’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심장 깊숙이 새겨진 불멸의 DNA이자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장병들의 정신적 구심점이다. 1964년 당대 최고의 거장 신상옥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6.25 전쟁 당시 가장 극적이고 영웅적인 작전으로 꼽히는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되살렸다.

북한군의 핵심 보급로였던 승호리 철교는 미 공군조차 수차례의 폭격에도 파괴하지 못했던 목표물이었다. 우리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의 젊은 조종사들이 목숨을 걸고 적진 깊숙이 날아가서 저공비행을 감행하여 폭파에 성공했다. 영화는 바로 이 절체절명의 순간 오직 애국심과 투혼으로 임무를 완수한 조종사들의 뜨거운 삶과 고뇌 그리고 희생을 그렸다. 주인공 나관중 소령 역을 맡은 신영균 선생님의 강렬한 연기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하늘의 사나이’라는 로망을 심어주었다.

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출처=네이버영화 포토]
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출처=네이버영화 포토]

영화의 성공은 스크린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빨간 마후라’의 흥행은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F-51 무스탕 전투기를 타고 하늘을 누비는 꿈을 꾸며 공군사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이는 단순히 지원자 수가 늘어난 것을 넘어 공군 전체의 위상과 질적 성장을 견인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1986년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탑건’이 개봉되고 미 해군 조종사의 활약상이 부각되자 그다음 해 해군항공대 지원자 수가 전년 대비 500퍼센트 급증하였고 군 전체의 이미지가 크게 향상되었다. ‘탑건’은 2015년 미국 의회도서관의 영화등록부(National Film Registry)에 영구보존 작품으로 등재되었다. 국가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공식적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빨간 마후라는 우리나라에서 탑건보다 더 큰 문화적 충격과 영향을 가져왔다. 우리는 이미 수십 년 전에 ‘빨간 마후라’를 통해 이런 현상을 먼저 경험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곡 ‘빨간 마후라’ 또한 국민 애창곡이 되었고 공군 군가로 대를 이어오고 있다.

이것이 문화예술의 힘이다. 예능의 끼를 물려받은 것일까. 마침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애니매이션 영화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주제곡 ‘골든(Golden)’은 신영균 선생님의 손녀인 이재(IJAE)가 작사 작곡 노래하여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축하를 드리자 ‘요즘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할아버지’라고 호탕하게 웃으신다.

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출처=네이버영화 포토]
영화 ‘빨간 마후라’ [사진출처=네이버영화 포토]

이날 오찬 자리에서 원인철 대장은 영화 ‘빨간 마후라’의 의미가 오늘날의 공군에게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정신적 자산임을 강조했다. 신영균 선생님은 빛나는 눈으로 당시의 촬영 상황과 국민적 성원을 회고하며 영화 한 편이 국가와 군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에 대한 소회를 말씀하셨다. “그 당시 전투장면은 요즘 같은 컴퓨터 기술이 없으니까 정말 목숨 걸고 촬영을 한 거야.”

이는 배우와 감독이 실제 대한민국을 살린 영웅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는 예술혼을 쏟아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 공군은 F-51이 아닌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로 영공을 수호한다. 하지만 조종석에 앉은 파일럿의 가슴 속에 흐르는 ‘빨간 마후라’의 호국정신은 그대로 남아있다.

신영균 선생님이 존경받는 이유는 비단 스크린에서의 열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수백억 원의 거액을 사회에 기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인물이기도 하다. 신영균 선생님은 자신이 출연한 수많은 영화 중 최고작으로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연산군’을 꼽으면서 사회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작품은 역시 ‘빨간 마후라’라고 말씀하신다.

필자가 “영화 ‘빨간 마후라’에 깃든 애국정신은 대한민국 공군의 DNA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화답하자 기뻐하시며 아들에게 즉시 말씀을 하신다. 그 한마디는 필자의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들, 내가 죽으면 관 속에는 성경책과 빨간 마후라 하나만 넣어다오.”

칼럼니스트 프로필

윤은기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 석사, 인하대학교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차관급),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 서울시공무원면책심의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협업발전포럼 회장, 대한민국 백강포럼 회장, 백소회 회장, 공군정책발전자문위원장, 도산애기애타지도자아카데미 학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방송활동으로 KBS 제1라디오 ‘생방송 오늘’, EBS TV ‘직업의 세계’, MBN TV ‘알기 쉬운 경제이야기’ 등이 있다. 주요저서로는 <협업으로 창조하라(2015)>, <대한민국 국격을 생각한다(2010)>, <매력이 경쟁력이다(2009)>, <時테크 시간창조의 기술(1992)>, <정보학 특강(1987)> 등이 있다.

수상경력으로 ‘공군을 빛낸 인물(2015)’, ‘대한민국공군전우회 자랑스러운 공군인(2015)’, ‘제9회 한국HRD대상 CHO부문 대상(2011)’, ‘홍조근정훈장(2009)’, ‘산업교육대상 명강사부문(199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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