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챗지피티]](https://cdn.lecturernews.com/news/photo/202509/187673_449847_1040.png)
[한국강사신문 김태현 칼럼니스트] 얼마 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장면을 목격했다. 하나는 버스 정류장에서였고 하나는 지하철에서였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이는 엄마에게 등을 돌린 채 휴대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엄마는 그런 아이를 뒤에서 쳐다보며 그 아이의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었다. 그저 화면과 눈빛만 오갔다.
이후 버스에서 내리고 지하철에 오르니 이번에는 한 아이와 할머니가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탔다. 아이가 조용히 고개를 들고 지하철 노선도를 보더니 역 이름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어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조용히 아이가 글씨를 다 읽을 때까지 지켜보셨다. 완벽하게 잘 읽었을 때는 칭찬했고, 어려울 때는 기다려 주면서 옆에 있는 다른 역들도 읽어보게끔 격려해 주었다.
옆에 있던 어른들은 아이가 글씨를 읽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속으로 아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어느새 역에 도착하자 아이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내렸다. 두 아이 모두 다섯 살 정도로 보였다. 그 순간 떠올랐다. 부모는 ‘쳐다보는 부모’와 ‘지켜보는 부모’가 있다. 그리고 오늘의 가정 교육은 이 둘의 차이에서 갈린다.
내가 말하는 ‘쳐다보는 부모’는 둘로 나뉜다. 첫째, 쳐다보지만 그냥 냅두는 부모이다. 둘째, 쳐다보고 통제하는 부모이다. 전자는 옆에 있지만 비어 있고, 후자는 옆에 있지만 과하다.
아이가 지금 무엇을 배우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어디까지 스스로 해보게 둘지에 대한 설계가 빠져 있다. 버스 정류장의 장면은 첫째 유형을 상징한다. 부모는 분명 아이와 함께 있다. 그러나 대화가 없다. 정서적 교류가 없다. 기준 또한 없다. “지금 무엇을 왜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하는지, 그다음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 아이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동안 부모는 조용히 뒤에서 쳐다만 보고 있다. 그 사이 습관은 말없이 굳는다.
행동은 말을 이긴다. 아이는 부모의 침묵을 ‘허용’으로 배운다. 그래서 이 유형의 문제는 방임과 닿는다. 곁에 있지만 기능적으로는 비어 있는 상태가 된다. 아이는 스스로 조절하는 기술을 배울 기회를 잃는다. 부모는 아이 옆에 있었지만 교육은 빠져 있었다는 점이 본질이다.
바로 여기서 질문이 필요하다. 같은 자리에서 휴대폰 말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 아이가 스스로 호기심의 길을 찾게 도울 수는 없었을까. 아이는 궁금한 것이 많고 아는 것이 있으면 말을 많이 한다. 부모는 그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활용해 교육의 실마리를 만들어야 한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발견하도록 돕는 태도가 핵심이다.
쳐다만 보는 부모는 어릴 때 교육의 본질을 놓치고 마냥 방치하다가 아이가 다 자란 뒤에 “왜 스스로 공부를 못 하니, 왜 집중을 못 하니”라고 묻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습관과 태도가 굳은 뒤다. 자율성과 조절력은 어릴 적부터 일상에서 길러지는 기초 역량이다.
지금의 침묵이 내일의 잔소리가 되고 오늘의 방치는 훗날의 비난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함께 앉아 있는 자리에서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둘째 유형은 쳐다보며 과하게 통제하는 부모이다. '헬리콥터 부모'로 설명된다. 아이가 겪을 사소한 불편까지 미리 차단하고, 실패를 통과하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시가 빠르고 길다. 숙제, 일정, 관계까지 부모가 조율한다. 겉으로는 세심해 보이나 결과적으로 아이는 자기 힘을 확인할 기회를 잃는다. 실패를 감당하면서 배우는 감각이 사라진다. 아이는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핵심 자기평가가 약해지고, 결정과 책임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진다.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순간 아이는 성장의 주인 자리를 내주게 된다. 이 유형의 문제는 과보호 자체가 아니라, 아이의 자율성과 유능감을 약화시키는 누적 효과에 있다. 아이는 안전할지 모르나 강해지지 않는다.
반면 ‘지켜보는 부모’는 다르다. 지켜본다는 것은 아이가 먼저 해보도록 내어주는 태도이다. 기다림이 중심이다. 필요할 때만 짧고 분명하게 개입한다. 경계가 있고, 의미 있는 피드백이 있다.
지하철의 장면이 그 정석을 보여주었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하는 순간 “옳다구나” 하고 한 걸음 물러섰다. 아이에게 시도를 맡겼다. 잘했을 때는 정확하게 칭찬했다. 어려웠을 때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의 속도를 존중했다. 그래서 아이는 노선도를 자기 힘으로 읽었다.
이런 작은 성공이 다음 시도를 부른다. 아이는 스스로 배우는 아이가 된다. 지켜보는 부모는 자율성을 보장하고 동시에 구조를 제공한다. 이 두 원리가 함께 작동할 때 학업 열의, 정서적 안정, 또래 관계, 진로 탐색까지 확장되는 선순환이 생긴다. 아이는 “내가 했다”는 경험을 반복하며 능력감과 책임감을 키운다.
결론은 분명하다. 아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 교육은 되지 않는다. 쳐다봄은 쉽다. 지켜봄은 기술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본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과 경계, 그리고 구체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오늘의 두 장면이 이를 증명한다. 버스 정류장의 모자는 보기에만 머물렀고, 지하철의 할머니와 손주는 지켜봄을 완성했다.
부모는 쳐다만 보지 말고, 지켜봐야 한다. 아이 스스로 먼저 해보게 두고, 어려우면 도움을 받아 끝까지 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가정의 학습 문화를 바꾸고, 아이를 더 멀리 가게끔 도와준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는 ‘쳐다보는 부모’와 ‘지켜보는 부모’가 있다. 그리고 오늘의 가정 교육은 이 둘의 차이에서 갈린다.
칼럼니스트 프로필

김태현 칼럼니스트는 진로와 자기주도학습, 리더십 분야에서 활동 중인 청소년 교육 전문가이자, 청소년 성장의 방향을 제시하는 커리큘럼 디자이너다. 교육 현장에서 '기린쌤'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불리며, 눈높이를 맞춘 소통과 따뜻한 메시지로 청소년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이라는 이른 시기부터 자신의 진로를 주도적으로 탐색한 그는 라디오 DJ, 최연소 행사 전문 MC, 유튜브 크리에이터, 라이브커머스 쇼호스트 등 다양한 미디어 경험을 통해 꿈을 현실로 바꾸는 도전의 과정을 실천해왔다. 이 같은 개인의 성장 여정을 바탕으로, 현재는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진로와 학습의 본질, 자신만의 길을 설계하는 법을 전하고 있다.
다이나믹스쿨 전임강사이자,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육성회 남대문지구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아우르는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진로, 자기주도학습, 리더십을 주제로 활발히 강의하고 있다.
특히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교육이 놓치기 쉬운 본질을 지키되, AI와 같은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미래형 교육 콘텐츠’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학생들이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태현 칼럼니스트는 『김태현의 10대 교육』 코너를 통해 청소년들이 겪는 학습 불안, 진로 불안, 비교 불안 등 실제 교육 현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교사, 학부모, 교육 관계자들에게 날카로운 통찰과 실천 가능한 대안을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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